양선규_대구교대교수2014.jpg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2019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서 난도(難度) 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습니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지문들과 문항들이 등장해서 많은 학생들이 당황했다는 후문입니다. 특히 31번 문항의 경우 난해한 과학지문이 나와 “과학탐구영역인지 국어영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는 수험생들의 지적과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31번을 풀기 위해 학생들은 먼저 거의 시험지 한 장 분량의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지문을 읽어야 했다. 그다음 시험지 반장에 달하는 ‘보기’와 ①~⑤까지 선지를 또 읽어야 한다. 보기는 ‘만유인력’ ‘질점’ ‘부피요소’에 대한 내용인데,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장들로 구성돼 있다. 본지가 현직 고교 국어 교사들에게 31번에 대해 물었더니 교사들조차 ‘지나치게 어렵다’, ‘고교생 시험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나도 못 풀겠더라’는 교사도 여럿 있었다.”(news.chosun.com)

물론 반대 견해도 있습니다. “상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고 사회를 더 잘 안다고 해서, 물리학, 경제학, 철학, 문학 등 전문지식이 담긴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이런 태도가 지적 독서를 방해한다. 자기 분야가 아닌 쪽의 수준 높은 교양서들을 꾸준히 읽지 않고 지식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므로 이번 수능의 국어영역의 지문 자체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문편집인 장은수 페이스북)

평생을 국어교육에 몸담고 살아온 입장에서 두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첫째, ‘지문 타당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늘 있어 온 문제입니다. 어려운 과학 지문이 나오면 이과생들이 득을 봅니다. 문학 지문이 어려우면 문과생들이 득을 보고요. 그 문제는 현재까지는 복불복입니다. 이번 수능과 곧잘 비교되는 법학적성시험(leet) 언어이해 영역에서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leet는 이과생들이 잘 풉니다. 문과생들은 과학지문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문학지문이 이과생들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써야 됩니다. 현재 leet는 약호 해득 위주의 시험입니다. 전문 용어로 ‘환유’보다 ‘은유’가, 그리고 ‘맥락’보다는 ‘코드’가 주도하는 퍼즐게임입니다. ‘언어이해’라는 명칭도 그런 성격을 일부 드러냅니다.

둘째, 수능이 ‘언어이해’가 아니라 굳이 ‘국어’를 표방한다면, 이번처럼 표나게 한쪽으로 치우친 코드 풀기(과학지식 기반 논리적 코드)는 바람직한 출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드보다는 맥락을 묻는 게 국어시험의 정도라는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고의로 무시한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듭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국어(國語)’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이미 그 안에 모종의 모럴과 이념(사회적 코드)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연민, 희생과 봉사를 아는 건전한 시민의식,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애국애족의 마음 같은 것들이 텍스트에 대한 맥락적 이해, 또는 공감능력이라는 명분 아래 버젓이 평가항목으로 등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어시험입니다. 지문 밖에 있는 지식이 지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경우도 그런 ‘(인류)공동체가 인정하는 모럴이나 이념’이 권장하는 것에 한해서만 허용된다는 것은 숙달된 ‘국어시험 출제자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입니다.

학창시절, 국어 점수가 턱없이 낮아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른 과목은 다 수(秀)인데 국어만 미(美)인 적도 있었습니다. 국어가 계산에 능하고 영리한(자존심 높고 자기애 강한) 아이들에게 때로 난감한 과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국어교사가 되고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 타개책으로 ‘코드와 맥락으로 문학 읽기’라는 책을 낸 것은 또 그로부터 30년 뒤의 일이었고요.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