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현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주임
선관위에 들어와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정치자금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중에는 정치후원금(후원금, 기탁금)으로 불리는 게 있으며 다수가 소액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하면 정치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 우리 위원회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하고 알리고 있으나 일반 국민은 시큰둥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곰곰이 따져보지 않으면 막상 이런 현상의 원인이 머릿속에 명쾌하게 정리되진 않습니다. 정치후원금 기부는 악플이 아닌 무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정치 후원금에 대해 관심도 안 두고 기부도 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내 밥값 내기(생존), 자녀가 원하는 것 사주기(본능), 세금 내기(의무), 축·부의금 내기(의무감), 어학 서적 구매기(투자), 아내에게 선물하기(두려움), 로또 구매(요행) 등의 예를 봐도 우리의 지갑이 괄호 안 같은 ‘동기’ 없이 그냥 열리는 법은 없으니까요.

불법적인 혜택이 자신에게 직접 오기를 바라고 정치인에게 사과 상자를 은밀히 건네는 경우를 제외하면 돈으로 하는 정치후원의 동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실한 의정활동과 어려운 재정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이 1만 원 남짓의 소액을 후원회계좌로 입금하여 순식간에 모금한도액을 채운 나머지 오히려 모금액 초과를 걱정하는 국회의원의 사례를 가끔 접하게 됩니다.

소액을 기부한 다수의 시민은 ‘좋은 의정활동, 깨끗한 정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자신에게 직접 오지는 않는 혜택을 바라고 머리와 가슴이 같이 움직여서 기부했을 뿐입니다. 현실정치에 관심을 두고 정보를 찾고 비교하는 과정에는 머리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내용 등의 좋은 법안과 정책 발굴에 매진하는 정치인에 감동하는 데에는 가슴이….

대의제의 선량들은 허구한 날 욕 먹을 짓을 하고 사필귀정으로 술자리마다 안줏감이 되고 있습니다. “음주 운전은 살인행위”라며 핏대를 높여 놓고 정작 본인은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된 정치인의 사례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버릴 수 없다면 정당과 정치인에게 감정적 언사만 내뱉을 게 아니고 찬찬히 따져 괜찮은 정당, 훌륭한 정치인을 후원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후원의 통로는 많습니다. 선거일에 그런 후보자나 정당 칸에 도장을 콕 찍고, 평소에 주위에 널리 알리는 것은 익히 아는 방법입니다.

저는 숫자로 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을 권하고자 합니다. 바로 후원금, 기탁금 같은 정치후원금 기부입니다.

소액이라도 좋습니다. 아니 소액이면 더 좋습니다. 1만 원이, 10만 원이 빼곡히 인쇄된 후원회 통장을 본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 다수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다수가 소액을 기부하지 않으면 은밀히 거액을 건넨 소수가 정치판을 자신들의 특혜 도구로 만들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좋은 정치라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우리 모두 가격을 내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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