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행렬이 마당을 지나간다
헝겊 위를 누비는 바느질 같다

한 땀 한 땀
개미들이 만드는 한 낮의 퀼트

보이지 않는 바늘귀에 / 온 몸을 꿰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누대(累代)의 노동

어머니는 날마다 바느질을 했다
손가락 끝에 맺힌 핏방울이
목단처럼 뚝! 뚝! / 누비 위로 떨어지던 여름

어머니가 완성했던 것은
여덟 식구의 캄캄한 입

누비 위를 건네는 퀼트처럼
한낮의 노동들이
뜨거운 여름마당을 지나고 있다





<감상> 누비는 공과 품이 많이 드는 바느질이죠. 바느질이 지나간 흔적이 꼭 개미들이 지나간 모습을 닮았어요. 온몸을 꿰어 양식을 배달하는 개미처럼 어머니의 바느질도 식구(食口)들의 캄캄한 입을 위한 노동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고된 노동은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누비저고리나 누비이불을 만들 때는 꼭 감꽃이 떨어지고 이내 여름이 왔었지요. 감꽃 아래 서면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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