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한국전쟁이 할퀴고간 길 따라 '평화의 새살' 싹트다

가산바위에서 중문으로 가는 성벽 길.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이다. 반목과 질시에서 이해와 화해로 우리는 건너갈 수 있을까. 자꾸만 마음 한쪽이 불안해지는 건 역사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지금부터 68년 전에 가장 치열했던 한국전쟁이 지나갔던 경북 칠곡 가산산성을 찾았다.

모든 경계에는 긴장이 흐른다.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까닭이다. 이해충돌이 가장 첨예한 경계 중 하나가 성(城)이 아닐까 싶다. 험준한 산성에서의 전투는 처절하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나 임진왜란 시절 행주산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에는 1200여 곳의 산성터가 있다고 한다. 산성에 얽힌 역사적 상흔이 숱한 것은 외세 침략을 많이 받았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가산산성은 현대사의 상처가 얼룩진 곳이다. 조선 인조, 숙종, 영조 때 각각 내성 외성 중성이 차례로 축성됐고 성곽의 총 길이는 7km가 넘는다. 산성이 축조된 후 큰 외세의 침입은 없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가산산성 부근에 엄청난 양의 폭탄이 떨어질 정도로 처절한 혈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거에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세월은 그렇게 가산산성에서 조금씩 끔찍한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가산산성과 가산바위까지 이르는 숲길을 따라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걷기 명소가 됐다.
진남문.
팔공산 서쪽 끝자락 가산(802m)에 있는 가산산성길 걷기 시작은 진남문에서 시작해 동문을 거쳐 중문 지나 가산바위를 오른 뒤 다시 진남문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총 거리는 약 10.6㎞에 4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걷는 길은 험하지 않고 울창한 활엽수림으로 이어져 있어 쉬엄쉬엄 오르기 좋다. 가산산성은 산 정상에서부터 계곡 아래까지 감싸 안은 ‘포곡식(包谷式)’과 산 정상부를 테로 두른 것 같은 ‘테뫼식’ 축성법을 섞어 만들어졌다. 가산 정상에는 험준한 골짜기를 따라 축조한 가산산성이 오롯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산성 흔적도 들러볼 수 있을뿐더러 널찍한 가산바위에 오르면 시원한 조망이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서 본 가산바위 모습.
큰 돌로 튼튼하게 쌓아 올린 성벽 가운데 가산산성 정문인 진남문 위에 누각이 올라 서 있고 ‘영남제일관방(嶺南第一關防)’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영남 제일의 방호 시설이라는 뜻일 게다. 안으로 들어서면 진남문 현판과 잘 축조된 성곽이 보인다. 짧은 길을 오르면 갑자기 숲이 열리면서 금강역사의 무서운 얼굴과 마주친다. 성안에 있는 해원정사(解圓精舍)로 1965년 용성사로 창건됐다 1981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됐다. 대웅전 뒤쪽을 향해 가면 돌담을 두른 단 높은 터에 가산산성 외성 축조를 주도한 관찰사 ‘이세재불망비(李世載不忘碑)’ 비각과 6기의 비석이 있다. 가산산성을 담당하던 관찰사와 별장의 영세불망비로 높은 분들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이다. 가산산성 축성 당시 10만 명의 백성이 동원됐고 많은 사람들이 공사 중에 죽었다고 하는데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비석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절 오른쪽으로 비켜 오르자 탐방지원센터가 나타난다. 길가에 ‘6·25 전사자 유해 발굴 기념지역’ 작은 안내판이 있다. 2000년에 시작된 유해발굴은 11년 동안 진행됐고 국군 전사자 26구를 찾아냈다고 한다. 가운데에 부직포가 깔려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 동문과 치키봉 방향 이정표를 만난다. 치키봉 방향은 에둘러 가는 완만한 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동문에서 만난다.

곧바로 올라가면 박석이 깔린 숲길로 약간 경사도가 있는 길로 동문까지 3.2㎞다. 조금 힘이 들어도 숲길을 걷는다. 숲길을 20여 분 정도 오르면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힘겨운 오르막은 여기서 끝나고 울창한 활엽수림 사이로 난 완만하고 넓은 길이 가산 산자락을 지그재그로 휘감고 오른다. 산행이라기 보다는 쉬엄쉬엄 걷는다는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린다. 임도 주변에는 큰 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빙하기 흔적이 남아있는 크고 둥글며 일정한 장축방향성을 가졌다. 모가 나거나 작은 돌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너덜과는 모양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빗자루로 돌을 쓸어 올려 가산산성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이 돌이 바로 돌강의 화강암이다.
돌강이라 불리는 화강암 돌무리.
삼거리에서 시작된 숲길은 제법 울창하다. 소나무도 눈에 띄지만 대체로 활엽수가 주종을 이룬다. 가을이 깊어지면 숲길 곳곳은 울긋불긋 화려한 색감으로 만산홍엽을 이룰 것이다. 한 굽이 휘감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산세는 높아지고 키 작은 산들의 모습이 너른 숲 사이로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산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이 숲길을 지나면 하늘 위에서는 나뭇잎이 춤을 추고 떨어진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늦가을은 숲길을 걷는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동문 정면.
갑자기 탁 트인 하늘이 보이고 복수초 군락지가 펼쳐진다. 복수초는 4, 5월 누런색 꽃이 피는데 황금색 잔을 닮았다 해서 금잔화라고도 불린다. 이곳 복수초 군락지는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몇 차례 오르다 넓은 분지에 이르면 왼쪽에 성벽이 나타나고 오른쪽에 동문이 자리 잡고 있다. 동문 양쪽으로 날개처럼 뻗어 나간 성곽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문 좌우로 치성처럼 바깥쪽을 향해 돌출되게 성을 쌓아 더욱 견고해 보인다. 차곡차곡 쌓인 돌에는 이끼가 낀 채로 남아 있고 오랜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겪은 탓에 예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진남문과 성벽.
동문에서 중문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동문에서 직진해 올라 가면 최근 발굴 조사를 끝내고 가지런히 정비해 놓은 칠곡도호부 터를 만난다. 성에는 동·서·북문 등 3개의 대문과 함께 8개의 암문이 설치됐다. 또 4곳의 포루와 1곳의 장대, 21개의 샘과 우물을 조성했다. 내성이 완성된 지 60년 후 외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약 3㎞로 남문과 암문 3개가 설치됐고 천주사(天柱寺)를 지어 승창미(僧倉米)를 보관했다고 한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축성됐는데, 길이 460m에 중문과 문루 1개가 만들어졌다. 중성은 비축미를 보관하는 데 사용했으며, 중요 시설은 대부분 내성 안에 있었다. 이처럼 가산산성은 행정 중심지이기도 했다. 내성이 완공되던 해 이곳에 종3품 도호부사가 다스리는 칠곡도호부를 설치하고 군위·의흥·신녕·하양 네 현을 관장케 했다. 관리에 불편한 점이 많아 순조 19년(1819년) 당시 경상감사로 있던 추사 김정희 아버지 김노경의 건의로 도호부가 팔거현(칠곡읍)으로 옮겨졌다.
복원 중인 중문 일부 모습.
일본잎갈나무라는 낙엽송 숲길을 지나면 금새 중문이다. 중문은 현재 복원 중이라 오른쪽으로 우회해 올라야 한다. 중문까지 왔다면 가산바위는 꼭 올라봐야 할 곳 중 하나다. 중문에서 내리막 길을 따라 걸어가면 복수초 군락지와 낙엽송 숲이 눈을 현혹하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은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중문에서 가산바위를 걷는 탐방객들.
가산바위 이정표가 보이고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가산바위다. 가산바위는 윗부분 면적이 약 270㎡에 달하는 너럭바위로 수백 명이 모여 앉아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바위의 가운데 큰 구멍이 나 있는데, 신라 말기 고승 도선(827~898)이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쇠로 만든 소와 말을 이곳에 묻었다는 전설이 있다.
중문에서 가산바위를 걷는 탐방객들.
올망졸망 솟아있는 산세뿐 아니라 산자락이 겹쳐져 이어진 모습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풍경이다. 팔공산과 비슬산, 합천 가야산, 구미 금오산 등 대구권 내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산바위에서 만난 탐방객과 성벽 모습.
내려가는 길은 가산바위에서 내려와 보존상태가 좋은 성벽 따라 중문을 향해 걷는다. 일부 복원을 마친 중문을 올랐다 남포루 방향으로 내려오면 발길을 멈추게 되는 낭떠러지 벽이 남포루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1954년 집중 폭우로 성벽 일부가 유실됐지만 수구문과 성벽을 원형대로 잘 복원해놓았다.
완벽하게 남아있는 성벽 모습.
성문 모양이 두 가지 양식이 섞여 있다. 남문은 무지개 모양의 반원형인 홍예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반해 다른 성문들은 앞쪽은 홍예문, 뒤쪽은 사각형 모양의 평거문으로 만들어진 조선 후기 축성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원된 수구문과 성벽.
복원된 수구문터를 지나면 이내 동문이다. 주변에 쉼터가 잘 조성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동문에서 진남문까지는 왔던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면 된다. 가산산성길을 걸으며 치열했던 한국전쟁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젊은 군인에 대한 위로와 지금도 진행 중인 평화 회담이 잘 진행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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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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