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영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동상

부석사 전경.

가랑비가 은행잎을 밟고 앞서 갑니다
탱자 가시에 찔려가며 단풍드는 석축처럼 무른 땅 단단히 디뎌가라 합니다
천왕문 지나 안양루 아래, 석벽을 타는 담쟁이가 첩첩 먼 산 뒤돌아보며
잡을 것 있으면 잡아가며 겨운 길 천천히 올라가라 합니다


한 사랑이 천년 동안 윗돌을 들고 아랫돌을 굅니다
그리하면 이끼 낀 바위가 땅 위에 떠서 다시 천 년을 견딘다 합니다
범종각 묶인 목어가 풀려 무량수전 석등 위를 지나가고
저 법고가 삼 천 세계에 북소리 울릴 때
비로소 흰 백일홍 붉게 지고
돌배가 익어 술이 되는 화엄의 땅 환하게 밝아올 것이라고


배흘림기둥이 가을볕에 바래어가듯 건너가라 합니다
일주문 나서는 선묘가 뒤돌아보며 은행잎을 뿌려줍니다
한 사람을 위해 먼 바다를 건넜던
해 저물어 더디기만 하던 이승길이
자꾸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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