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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21대 총선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하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이 올 연말이면 종료된다. 지난 7월 정개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이후 여야는 90일이 지나도록 위원회 인적구성을 미룬 채 불필요한 정쟁으로 시간만 낭비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여야는 마침내 인적구성을 마무리하고 이달 22일에서야 정개특위 소위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과연 남은 한 달여 동안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내놓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지금이야말로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정당 득표율에 연동한 전체 의석수 배분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관련 여러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앞서 지난 2015년 중앙선관위는 현재 300명의 의석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구성을 2대1로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방안을 정식으로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거제도 개혁은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비록 짧은 남은 일정이라 하더라도 정치권이 마음만 먹는다면 제대로 된 합의안 도출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존 양당체제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거대정당들의 어깃장 때문에 이번 역시 흐지부지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여당 대표는 자신들이 이미 당론으로 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배분하는 방식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이다. 즉 배분된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가 적으면 부족한 만큼을 비례대표의석으로 채워주는 식이다. 현재 높은(?) 지지율로 충분한 지역구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지금의 여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자기들이 가져갈 수 있는 비례대표의석이 다른 소수당에 비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의석이 줄어들 경우 비례대표를 지망하는 인재영입 자체가 어려워질 거란 어쭙잖은 핑계마저 대고 있다. 참으로 속이 빤히 보이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양원제도 아닌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지역구 의석이든 비례대표 의석이든 전체 의석에서 자신들이 차지한 정당 득표율에 맞는 의석수를 가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참신한 인재영입이 필요하다면 지역구를 통해서도 가능한 일을 굳이 비례대표 추천을 고집할 게 뭐란 말인가. 민의가 어떻든 간에 소수정당의 다수 의원들이 원내로 진입하는 것을 거대정당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낸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근거 없는 오만함에 그저 한숨이 절로 날 지경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어깃장 놓기는 제1보수야당 역시 도긴개긴이다. 현재 정개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비례성 확보를 위한 비례대표의석을 늘리기 위해선 전체 의석수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너무 높아 무턱대고 의석수를 늘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선관위 방안대로 현행 의석수를 그대로 두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구성 비율을 2대1로 할 경우, 지역구 의석이 지금보다 줄 수밖에 없어 기존의 선거구 획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를 너무도 잘 아는 제1야당은 국민의 정치혐오 여론을 역이용해 오히려 의원 수를 줄여 국민혈세 부담을 줄이자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선거제 개편 논의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여당이 안 되더라도 제1야당은 충분히 될 수 있는 거대 양당체제 수호를 위해서 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며 비례성 강화라는 선거제 개편 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혁의 속도가 가장 더딘 곳이 정치 분야이다. 그리고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났듯이 국민적 신뢰도가 가장 낮은 국가기관이 국회다.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치권이 정치개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의 주체가 되는 이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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