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jpg
▲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외압을 핑계로 진상을 묻어 버리고 가해자인 형제복지원 원장과 국가기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공헌한 검찰의 대표가 피해 생존자들 앞에서 사과를 한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문제는 사과가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문 총장의 사과는 확정판결이 난 지 29년 만에야 이루어졌다. 납치 당시 10대 청소년은 이제 60을 바라보는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검찰도 사과했는데 실제로 수많은 사람을 납치해 형제복지원에 넘겨준 경찰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경찰청장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사과하던 중 문 총장은 눈물을 보였고 언론은 내용보다도 ‘눈물’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문 총장의 눈물이 한 공직자의 눈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참회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대법원장도 국회의장도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다. 정부가 저지른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사과해야 마땅한 일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1975년 12월 15일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라는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제정했다. 국가 법률에 기초하여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시민에 대한 납치와 감금이 실행되었다. 강제연행이 경찰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부산시가 협조하였다. 국가의 묵인과 무관심 속에 강제노동과 잔혹 행위가 이루어졌다. 1987년 구타에 의한 사망 사건과 35명의 집단 탈출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진상을 철저히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했다. 아울러 국가배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부산 주례동에 있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12년 동안이나 운영된 인권압살 기관이다. 어린이, 청년들과 시민들을 강제로 납치 감금한 뒤 학대와 강제노동, 잔혹 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암매장과 성폭행까지 실행된 인권유린 시설이다.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이르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다.19 87년 당시 전국에 형제복지원 같은 유사 시설이 36개나 있었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기소했지만 1989년 대법원은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다. 검찰이 외압을 받고 스스로도 수사 의지가 없었던 점도 문제지만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사람이 500명 넘게 죽어 나가고 수많은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고 자살로 몰고 간 인권유린 사건이자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사법부의 치욕이자 대한민국의 수치이다. 진실에 눈감고 인권유린을 묵인한 판결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가의 존재 근거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참사였다.

인권유린을 자행한 형제복지원이 1985년에 18억 원, 1986년에 21억 원의 국가 및 부산시 지원금을 수령했고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형제복지원 설립과 운영의 공로가 있다’ 해서 국민포장 석류장,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 당사자들의 국회 앞 1인시위를 시작으로 외롭고 고된 진상규명 투쟁이 전개되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이 국회 앞에서 387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법안이 잠자는 건 국회의원들이 잠자기 때문이고 국회의원들이 잠자는 건 거대 정당들이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역사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거대 정당들과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한다.

문 대통령은 1987년에 신민당 부산형제복지원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통령께서도 특별법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