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멸치는 다 자라야 15㎝ 남짓이다. 하지만 이 작은 멸치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물고기 박사로 유명한 황선도 박사는 우리나라 바닷물고기 정보를 담은 책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를 내기도 했다. 책 제목의 블랙박스는 멸치 머리의 이석(耳石)이다. 평형기관 구실을 하는 이석은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가 갖고 있는 특징인데, 이 이석을 쪼개 성장선을 분석하면 이 물고기가 언제 태어났는지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 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 네 몸을 이루는 바다로/ 삶의 부력을 완성하리/ 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 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중략)/그리하여 어느 궁핍한 저녁/ 한소끔 들끓어 오르는 국냄비 / 생의 한때 격정이 지나/ 꽃잎처럼 여려지는 그 살과 뼈는/ 고즈넉한 비린내로 한 세상 가득하여,/ 두 손 모아 네 몸엣것 받으리(하략). 김정태 시인은 ‘멸치’를 위한 헌사를 이렇게 시로 남겼다.
천적을 피하기 위해 멸치는 본능적으로 무리 지어 다닌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지역마다 조금 다르다. 포항은 배 3척이 선단을 이루는 양조망으로 잡는데 비해 가까운 경주는 유자망으로 잡는다. 양조망은 본선 1척에 보조선 1척, 가공선 1척이 한 통을 이뤄 그야말로 한통속이 돼서 멸치를 잡는다. 유자망은 배 한 척이 그물을 수면에서 수직으로 펼쳐 내려 멸치 떼를 포획한다. 겨울 멸치떼가 경주와 포항 연안에 몰려 항구마다 멸치 털기로 떠들썩하다. 씨알 좋은 멸치의 고소한 살을 발라 버무린 회무침 한 번 실컷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