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 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 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만기 출소해서 /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감상> 아무나 아무 때나 무인도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죄와 벌을 조금 알 것 같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생에 집착이 강한 자는 도무지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육지에서 거대한 섬을 쌓고 욕망의 덩어리를 망망대해에 암초(暗礁)같이 뿌려 놓지 않는가. 모든 기정사실을 포기하고 한 백년 쯤 섬에 들어가 자신의 무덤마저 물색하고 싶은 꿈을 꾼 적이 있다. 자전거 타고 섬을 돌면 섬과 공전(公轉)하고, 나는 스스로 굴러서 풍장(風葬) 할 때를 아는 그 절해고도를. 삶과 죽음을 모두 알아버렸다면 다시는 무인도에 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섬이 있으므로.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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