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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근대 일본의 시작은 메이지 유신이라 할 수 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은 에도 막번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권력 확립으로 일본 근대국가를 수립한 정치·사회적 대변혁 과정을 일컫는다.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중심세력은 사쓰마번(藩)과 조슈번의 하급무사들이었다. 사쓰마번은 규슈섬 서남단 가고시마현 일대를 영지로 삼은 번이었고 조슈번은 혼슈섬 서쪽 끝 야마구치현 일대를 영지로 삼은 번이다. 번(藩)은 도쿠가와 막부(幕府) 체제하의 지방정권으로서 다이묘(大名)들의 영지를 말한다. 에도 막부시절 200여 개의 번이 있었다.

16세기 말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범하였을 때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앞장을 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반대파 서군이 맞붙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서군으로 참가했다가 패전하였다. 이에따라 도쿠가와 막부체제 260여 년간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중심세력으로 등용되지 못하였고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19세기 서세동점 시점에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과 혁신정치를 통하여 막부체제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이렇게 힘을 기른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막부타도를 위한 정치·군사 동맹인 삿초동맹을 결성하여 막부체제를 무찌르고 메이지 유신 시대를 개창하였다. 사쓰마번은 문무겸전을 모토로 하는 전인교육을 하급무사에게도 실시함으로써 인재를 양성했다. 사쓰마번은 메이지 유신의 최고 수훈자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의 고향이다. 또 러일전쟁 때 만주군 총사령관으로 봉천회전에서 러시아군을 대파한 오야마 이와오, 동해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킨 도고 헤이하치로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부친 고향도 사쓰마번이다.

조슈번의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사숙(私塾)에서 교육을 통해 제자들을 길러냈다. 쇼인은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는 일군만민(一君萬民)론을 주창하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미국 등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되자 ‘구미열강과의 조약은 지키되 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국부와 토지의 손실은 조선 및 만주로의 영토 확장으로 만회한다’는 정한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책임을 물어 막부 고관의 암살을 기획하다 발각되어 30세의 나이에 참수되었다. 존왕양이와 정한론을 주창하며 천황을 국가통합의 중심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요시다 쇼인은 근대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비록 우리에게는 일제 침략의 사상적 원흉이지만 쇼인이 뛰어난 점은 교육에 있어서 신분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문이라는 것은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알고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쇼인의 국수주의 사상은 그의 사후 제자들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메이지 유신의 3걸 중 한 명인 기도 다카요시, 조선침략의 주범인 이토 히로부미, 군부실력자로 총리에 오른 야마가타 아리토모, 조선 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찌 마사타케,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이 조슈번 출신으로 쇼인의 후학이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도 조슈번 출신이다.

조슈번이 있던 야마구치현은 아베총리의 지역구가 있는 곳이다. 아베 총리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와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추종한다.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려 하고 한국에 대하여는 특유의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쇼인을 추종하는 그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사쓰마번이 있었던 가고시마현을 방문하여 신 삿초동맹을 운운하기도 하였다. 삿초동맹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부국강병을 가져왔지만 우리에게는 정한론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는 또 한번의 삿초동맹과 혁신으로 부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현실적인 정책 시행으로 일자리 창출, 일본의 국제적 위상 회복, 장기불황 탈출, 중산층의 저변 확대 등을 이루어 내고 있다.

아베의 여러 정책들은 일본 국민의 지지로 이어져 아베 총리가 장기 연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를 보는 우리로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과 일제 병탄은 일본의 침략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내부로부터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1야당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에 대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는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고 여당은 현실과 괴리된 이념주의적이고 이상주의 정책으로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지고 있다. 아베의 정책을 뛰어넘어 우리나라가 자유와 인권 그리고 평등의 균형 속에서 부민부국의 통일강국이 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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