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내 주머니 속에 넣고 걷는다,
부끄러움이 쏟아지는 여름 속을,
주머니 속에서 검붉게 졸아드는 햇빛과
꿈틀거리는 손가락과,
손가락과 뒤얽혀 물들어가는 당신과


반쯤은 실성할 때까지, / 반쯤은 실성해서 저 바다도,
저 바다 끝에 우리가 묶어두었던 작은 방도 미로가 될 때까지,
미로에 갇혀 이 부끄러움을 잊을 때까지, 서쪽으로
난 창을 타고, 기억에 없는 꽃이 자연스레 자라고,


꽃의 핏자국 속에 숨겨둔 바람처럼, 별처럼, 시선처럼
거친 말의 갈퀴처럼


기억에 홀려 꼭두서니처럼 반쯤 미치면 좋겠지,
아예 미쳐 걸으면 좋겠지,
내 주머니 속에서 괴물이 될 당신과
주머니 바깥에서도 뒤엉켜서.





<감상> 그대를 지독하게 사랑하면 누구나 견딜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대책이 없습니다. 반쯤 실성케 하고,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기억에 없는 상상을 하므로 거친 말의 갈퀴처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기억에 홀려서, 착각에 빠져 멋대로 상상을 하므로, 주머니 속에나 바깥에서나 뒤엉켜서 그대를 괴물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이 그대와 연결되고, 그리움이 간절하니까 오늘 여기에서 삶의 의미를 두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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