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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3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청렴도 순위에서 가장 낮은 5등급의 ‘불명예’를 얻은 지방소도시에서 같은 신분으로 정년 퇴임한 친구의 푸념이다. ‘안 된다. 없다. 모른다’를 줄여 ‘3다’라고 했다. 뜬금없는 말인 것 같지만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은어라고 한다. 행정민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먼저 ‘안 된다’를 전제하고 왜 안 되는가에 대한 답변은 법 조항에 ‘없다’는 것이며, 왜 없느냐 설명해달라는 주문에는 단칼에 ‘모른다’는 것이다. 한때 공무원인 ‘갑’의 신분으로 재직 중 자신도 익히 듣던 말이었지만 퇴직 후 민원당사자인 ‘을’의 입장이 되고 나니 이제야 실감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개한 ‘공공기관 청렴지도’는 중앙은 물론 지역의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등급별 색깔로 표시하여 그동안 감추어진 부패와 비리를 척결해가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지역의 청렴지수는 공공기관의 구성원인 공무원의 민원에서 시작된다. 공직 부패가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대다수의 국민이, 민원의 당사자인 ‘을’ 의 입장이며, 민원처리의 불만을 갑의 횡포로 규정짓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다. 친구 역시 재직 중에는 몰랐던 민원인의 고충이 지나고 난 후 민원 당사자의 같은 처지가 되어서야 알게 된 셈이다.

청렴으로 비교되는 공무원의 금품 수수와 향응 비리는 요즘 들어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어쩌다 매스컴에 오르는 사건·사고는 개인적 일탈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극소수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증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민원의 ‘행태규제’로 대표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갑’ 질에 대한 심각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기속’과 ‘재량권’의 행위에서 법적 요건이 충분함에도 ‘안 된다’는 유권해석은 ‘인·허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민원인을 절망하게 만든다. 법에 없다는 핑계와 불가능한 조건의 요구로 인한 불허가의 처분은 민원인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들이, 마지막으로 관련 법령과 중앙정부에 호소하며 대법원 판례 등을 제시해보지만 담당공무원의 유권해석 앞에서는 무색한 것이 현실이다.

선출직공무원이든 행정직공무원이든 공복이란, 공공의 업무를 대상으로 하는 심부름꾼이다. 영문의 표기인 ‘civil servant’ 는 말 그대로 시민의 하인이란 의미이며, 존재의 이유가 주민에 있다는 뜻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의 먹구름에 아랑곳없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해고로부터 자유로운 곳, 한 번의 실수에도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전한 경쟁사회에서 구조조정 없이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신의 직장인 이유가 단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철밥통’이라는 비유에서 복지부동하는 자리가 아니라 솔선수범하며 ‘안 된다. 없다. 모른다’ 대신 ‘된다. 있다. 안다’의 ‘3다’를 외치는 주인공이 진정으로 주민을 대하는 공무원의 자세이며 존재의 이유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여 가치관 결핍으로 빚어지는 극소수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다수는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고의 경쟁률을 갱신하는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우리사회 전반에 대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공복이라는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굳이 윤리헌장까지 암송하지 않더라도 자율적 윤리관을 망각하지 않는 초심에서 과거의 관행이나 이론을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적극성이 공복의 사명감일 것이다. 공공기관 청렴지도의 등급별 색깔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참된 공무원의 자세를 요구하는 주민의 입장에서 보는 ‘3다’는 ‘갑’질 일뿐이며, 횡포이며, 버려야 할 적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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