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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사람 간의 의사소통에는 몇 개의 변수가 있습니다. 말하는(쓰는) 사람, 듣는(읽는) 사람, 메시지, 코드, 접촉, 맥락 같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의사소통은 이 여섯 가지 변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주 사무적인 관계나 아주 친밀한 관계일 때가 일반적입니다. 휴대폰 문자로 ‘접촉’할 수 있는 관계가 본디 그러합니다. 극과 극입니다. 어중간한 사이에서 이 ‘접촉’을 사용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그래서 이 ‘접촉’에 사용되는 코드 역시 극과 극일 때가 많습니다. 아주 공식적인 언어이거나 아니면 아주 사적인 언어(줄임말이나 특수기호)일 때가 많습니다. 맥락적 측면에서도 휴대폰 문자 행위는 서로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유용합니다. 상반된 맥락(상황이나 환경)에 처한 이들 사이에서는 문자 메시지로 인한 오해가 빈발합니다. 문자메시지 자체의 뜻은 그리 중요하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전달되는 뜻은 코드와 맥락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질’ 뿐입니다. 메시지가 뜻의 주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여섯 개의 변수 중에서 가장 힘이 약한 것이 ‘메시지 그 자체’입니다.

국어 시험을 출제할 때 출제자가 고려해야 하는 것도 위에서 말씀드린 여섯 가지 요소입니다. 올바른 국어 능력을 형성하는데 필수불가결적인 것들이므로 그 중요성에 따라서 차등을 두어 하나하나 평가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국민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코드(어휘, 문법, 문화)를 숙지하고 있는지 ②고등교육을 받을 만한 독해력(맥락적 독서)은 갖고 있는지 ③문학장르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공감능력(접촉)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물어서 확인해야 합니다. 코드 평가 위주의 타 과목보다 맥락과 접촉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어 영역 출제가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②와 ③이 있기 때문입니다. 맥락에 따른 은유적, 환유적 의미 전이(교환과 확장)도 물어야 하고, 부분에서 전체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유추 기능도 평가해야 합니다. 장르적 특성에 따라 특정 정서를 환기하는 특수 언어(문학)에 대한 이해도 평가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그런 평가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시험장에 들어섭니다. 기출문제도 풀고 교육방송도 보고 문제 해결 전문가인 선생님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서 부단히 노력합니다. 문제는 출제자입니다. 출제자는 자기가 맡은 각자의 출제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경지를 이룩한 분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②와 ③에서는 그런 분을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짧은 기간 합숙을 하며 문제를 만들려면 엄청난 공력을 지닌 분들을 출제위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문제’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기는커녕 오로지 ‘되는 문제’ 하나를 만드는 데 모두가 급급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평가의 객관성을 위해서 객관식 설문을 구안해야 하는 문제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설문 하나가 곧 문제 하나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만약 자칫 방심하게 되면 제시문을 보지 않고 설문만 보아도 답이 나오는, 이른바 ‘누수(漏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자들이 다 전하지 못하는 의미와 느낌을 전합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을 그림이 나서서 돕습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본디 차가운 것이지만 아이들 그림책에 나오는 함박눈은 ‘따뜻하게 감싸는 그 어떤 것’을 나타냅니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모두 그렇게 따뜻하게 감싸져야 한다는 것을 그림동화는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합니다. 국어는 국민의 언어입니다. 국어는 ‘국민을 따뜻하게 감싸는 그 어떤 것’ 중의 하나입니다. 차가운 언어 그 자체만 공부해서는 도저히 저 높은 세상을 볼 수 없는 곳이 국어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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