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jpeg
▲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새로운 노사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소위 ‘광주형 일자리’ 사업모델에 대한 성사 여부에 각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산업을 지역의 중심산업으로 키우려는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시민과 지역노조가 서로 뜻을 합쳐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사업의 주된 목적이다. 노·사·민·정이 참여해 ‘사회적 대타협’을 바탕으로 지역의 실업문제를 해결한다는 신선한 발상 덕에 가뜩이나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정부와 여당까지 관심을 보이며 일의 성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난항을 겪다 막판 진통 끝에 극적으로 타결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다시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정부, 여당은 광주광역시가 안 된다면 이 실험적(?) 방식을 실현할 다른 지역을 물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광주형 일자리’ 방식이 과연 지역 일자리 창출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 2017년 6월 광주지역 노·사·민·정은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원-하청 관계 개혁’ 그리고 ‘노사 책임경영’이라는 4대 의제에 합의했다. 우리 산업현장 전반에 만연한 문제점을 다 함께 깊이 고민해보고 이를 극복할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데 동의한 것이다. 만약, 고비용, 저효율 그리고 노·사간의 갈등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동차산업에서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될 수만 있다면 원-하청 간의 이중적 노동시장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협력적 노사관계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제 합의 자체는 충분히 가치평가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제껏 보여 온 노·사 간의 높은 불신의 벽을 과연 말처럼 쉽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또한 컸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6월 현대자동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사업계획에 참여하면서 이 같은 기우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절반 임금’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 등에는 대략 합의를 했지만 ‘임금단체협약’(임단협)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노사 간의 큰 시각 차이로 양보 없는 줄다리기만 이어졌다. 사업시행 이후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임금인상협상을 유보하자는 사측과 ‘임단협’은 노동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라며 맞서는 노조 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결국 타결 직전까지 갔던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노·사 양측이 상호불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대도 풀기 어려운 노동기본권 문제를 정작 노조는 배제된 채 시당국과 사측이 협상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임단협’을 일정 기간 동안 유예한다는 양측의 밀실 협상안이 알려지자 당연히 노조 측은 반발했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는 한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측의 입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노, 사가 풀어야 할 문제를 시 당국이 독자적으로 나선 것도 의외지만 기업 역시, 노조의 의견을 배제한 채 시와 협상을 벌였다는 사실은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느낌을 준다.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가시적 성과가 급한 시 또는 정부의 입장에서 애초부터 관심이 없던 기업을 무리(?)하게 끌어들인 대가로 일종의 특혜를 주려 했던 건 아닌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다.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번 ‘광주형 일자리’사업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내용과 과정이 세밀하지도, 투명하지도 못하다면 허울만 있을 뿐, 결코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에는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아직 협상 주체들이 완전히 협상결렬을 선언한 게 아니어서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경제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노·사 간의 갈등을 풀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