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공감은 그 사회가 처한 역사적 배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조선 시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왕도주의와 관료적 통치질서의 유전자를 가진 우리는 서구사회에 비해 소통 과정에 가끔 수직적 역학관계가 문제가 된다. 성리학은 명분 질서와 가부장적 수직질서의 형태로 우리의 DNA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기자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지적은 뜨끔하게 와 닿았다. 그는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를 한국의 수직적 위계(位階) 문화로 인한 불통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비행기 기장의 명백히 잘못된 판단과 지시에 부기장이 감히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해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비극이란 것이다.

글래드웰의 지적이 서구인의 문화적 우월의식에 입각한 주제넘은 해석이라는 비판과 실제 추락 원인의 타당성 여부는 제쳐놓더라도 우리 사회의 권력에 기초한 수직 위계의 불통 문제를 깡그리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공중을 날고 있던 비행기에서 또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아르헨티나에서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 기자간담회 장에서의 일이다. 대통령은 한 기자가 “순방 중에 국내에서 관심사가 큰 사안이 벌어졌기 때문에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다”며 국내 현안에 대해 질문하려 하자 “짧게라도 제가 질문 받지 않고 답하지 않겠다. 외교 문제에 집중해 주시기 바란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앞으로 국민께 보고할 중요 내용은 대통령이 직접 말씀드리겠다”며 소통을 강조했다. 하지만 기내 간담회 장에서의 대통령의 모습은 위계의식을 여실히 드러낸 불편한 모습이었다. 그간 대통령이 소통을 위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 믿어 왔던 국민이 대통령을 뜨악하게 바라보게 만든 장면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불통문제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소통을 강조해 온 대통령이 또 위계와 불통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비단 여객기 조종의 문제 뿐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똑같이 해당 될 것이기 때문에 우려스럽고 나쁜 징조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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