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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빠른 교통수단 하면 KTX가 떠오를 것이다. 빠르면서도 안전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최근 연이어 터진 사고를 보면 그런 기대를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KTX를 애용하는 시민들은 불안하다. 그동안 KTX가 안전문제를 안고 있다는 보도는 많이 나왔다. KTX-산천의 바퀴에 문제가 있다는 뉴스도 잇따랐고 정비 인력과 예산이 감축되어 불안하다는 뉴스도 많이 나왔다. 이명박 정권이 민영화·외주화를 시도할 때부터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쉼 없이 터져 나왔다. 강릉 KTX 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허투루 듣고 넘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곳곳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그동안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홍철호 의원이 코레일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5년 7개월 동안 KTX 사고는 204건에 이르렀다. 매달 3건씩이다. KTX, 기관차, 전동차의 고장사고를 합치면 같은 기간에 600건이 넘는 사고가 났다.

강릉 KTX 탈선 사고를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묻히고 있다. 사고 수습 때 승무원의 역할은 눈에 안 띄는 반면에 동승한 군인들의 역할은 컸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승무원의 나태함과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했을지도 모른다.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수행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길 가는 사람한테 물어도 백이면 백 “안전업무는 승무원이 수행해야 할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현실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승무원은 평상시 안전업무를 할 수 없다. 승무원에겐 비상시에 맞춘 안전 매뉴얼과 안전교육 기회가 제공되지 않으며 안전훈련은 상상할 수 없다.

고속 열차에 승객이 1000명 타는데 승무원은 안전업무에서 배제되고 열차팀장 혼자서 안전을 모두 책임지는 상황이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정직원만 안전업무를 할 수 있는데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승무원은 정직원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2심을 뒤집는 판결이다. 이 판결에 따라 승무원은 오늘도 안전업무에서 배제되고 있다.

어느 날 KTX 사고가 터졌고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승무원들이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못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면 승무원에겐 어떤 책임이 있을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간접 고용된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노동자다. 책임을 묻기 어렵다.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승무원에겐 승객의 안전을 챙길 책임이 있다. 사고 수습이 잘못되면 사법당국은 이 법에 따라 승무원을 처벌하려 들 것이다. 법 끼리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승무원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양승태 대법원이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해 KTX 승무원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건을 재판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철도 안전이나 승객 안전, 승무원의 노동권을 저버린 판결을 한 판사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승무원이 계속 안전업무에서 배제되면 작은 사고가 대형 참사로 발전될 수 있다. 지난 9월 코레일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제기하며 객실 승무원을 직고용하라는 조정안을 냈다. 하지만 국토부와 코레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도법 개정 뒤에 하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가.

승무원은 사고가 나면 가장 가까이서 가장 정확하게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안전업무에서 배제당한다. 안전적폐다. 지난 4일 승무원 30여 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KTX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 수 없다”며 절규했다. 승무원 직접고용, 지금 결단할 때다. 미루면 늦는다. 사고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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