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를 집에 두면 부자가 된다는데
식탁 위 화병에 꽂혀 있는 천성이 造花인 그는 침묵이다
그 옆에 보초선 술병, 실눈으로 째려보며
- 너거 아부지가 먼저 죽어야 될 낀데


머리숱이 빠져 가르마도 없는 엄마는 자식이 가져간 전복죽을 먹으며
무슨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만난 듯
전복 껍데기 같은 말 툭툭 내뱉는다


이쯤 되면 예방주사 맞기 싫어 맨 뒷줄에 설 때처럼
불안에도 소리 없이 금이 가고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자주 더 실금이 가고
아버지 덕분에 힘껏 아프기도 한데


스무 네 살에 떠난 형이 남긴 금은 좀체 아물 기미가 없고
둘러보면 금 간 것이 적지 않아 친정집엔 돈보다 금이 많다
저녁연기가 금간 하늘을 비낀다





<감상> 천성적으로 침묵을 지키던 엄마는 늘그막에 침묵에 금이 가고 맙니다. 형제 중에 먼저 간 자식 때문에 금은 아물 기미가 없습니다. 특히 아버지 때문에 더 많은 실금이 갔으므로 하소연을 자식들에게 합니다. 평생 동안 지켰던 비밀을 다 털어 놓고야 맙니다. 어린애가 말문이 트이듯 서운했던 점은 끝날 줄을 모릅니다. “너거 아부지가 먼저 죽어야” 자식들이 편할 낀데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는 전복껍데기처럼 허망하기만 하고 이내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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