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섭은 말했다. “사람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나는 책장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방죽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 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중에서)


1978년 6월 나온 소설가 조세희의 ‘난쏘공’의 상황은 아직도 그대로다. 아니 그때보다 더 구조적으로 굳어졌다. 지섭이 물욕에 눈 먼 세상에 던지는 이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난쏘공’은 벼랑 끝에 몰린 최하층민의 생활상과 노동환경, 주거문제 등을 상징적 언어로 그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착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며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지섭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달나라로 비상하기 위해 굴뚝 위에 올라가 결국 떨어져 죽고 마는 벼랑 끝 사회를 그린 소설이다. 


딱 40년 전의 상황을 그린 이 소설 속 현실이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건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챙기려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욕이 24세 청년을 사지로 내몰았다. 안전판 하나 없는 최악의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새파란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대기업이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 험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주화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와 도덕률을 붕괴시키는 ‘위험의 외주화’부터 막아야 한다. 청년의 죽음에 답하기 위해 외주와 하도급의 불공정 구조를 꼭 해결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나태로 위험 업무에 대한 도급을 금지하고 사망사고가 나면 원청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국회 문턱에 걸려 있다. 국회의원들이여 제발 각성하라.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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