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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금곡사는 경주 안강읍 두류리 삼기산에 있는 암자이다.

작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원광법사의 부도 탑이 있는 절.

금곡사 답사길에 나섰다.

경주역, 나원, 청령을 거쳐 사방까지는 버스로. 약수터에서 샛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평탄했으며, 감나무에 발갛게 달린 홍시 위로 투명하게 부서지는 햇살. 채소밭엔 부풀어 오른 배추의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냇가 자갈밭을 일구어 배추를 심었다. / 나를 심었다. / 아침마다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고 / 물을 주었다. / 썩은 낙엽도 깔아 주었다. / 나풀나풀 잘도 자란다. / 내가 자란다.

배추 포기가 나풀나풀 자라는 모습에서 아침저녁으로 맛본 작은 기쁨을 되새기며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계곡에 들어섰다.

바람도 없이 안온한 산길, 돌이 없어 고무판을 걷는 느낌의 낙엽 쌓인 길이 호젓하다.

몇 구비 돌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벌써 고갯마루. 바로 내리막길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길 자체도 평탄하지만 욕심 없이 걷는 길이라 더 수월한가 보다. 남은 생을 욕심 없이 살아갔으면 싶다.

갈림길 삼각지에 농막이 있었다. 벌겋게 깃을 자랑하는 수탉 두 마리, 엉덩이가 팡팡한 암탉 십여 마리가 수탉의 관심 속에 모이를 찾고 있었다.

이게 정말 토종닭. 한 마리 잡아 삶아놓고 마음에 맞는 벗 불러 소주 한 잔.

문득 정송강의 ‘재 너머 성권농 집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히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하는 시조가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자연인임을 자처하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삼각지에서 좌회전하여 600~700m 돌아들면 나타나는 작은 암자가 삼기산 금곡사다.

마당에는 원광법사의 부도 탑이 삼 층으로 서 있고 그 뒤로 대웅전, 탑의 오른쪽엔 요사채, 대웅전의 뒤 언덕배기에 산신각. 작은 절이다.

원광법사 부도 탑에 합장,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 후에 다시 부도 탑(浮屠塔)에 눈길을 주었다.

탑신에 돋을새김 된 불상이 예사롭지 않았으며, 일반적인 부도와 달리 탑으로 세워진 점이 특이하다.

원광법사는 화랑도의 생활신조인 세속오계를 제정한 인물로,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여 ‘걸사표’를 지어 중국 수나라에 보내기도 한 고승이다.

삼국유사에 진평왕(眞平王) 52년(630) 황룡사(皇龍寺)에서 입적하여 명활산(明活山)에 장사 지내고 삼기산(三岐山) 금곡사에 부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단다.

부도는 많이 파손된 것을 복원한 흔적이 그대로 보이며, 3층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었다. 넓은 바닥 돌에 1층 기단(基壇)을 두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았는데, 바닥돌과 탑신의 1층 몸돌 및 3층 지붕돌만이 원래의 것인 것 같았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네 면마다 문 모양의 무늬를 두고 그 안을 살짝 파내어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다. 일반 석탑 형식의 독특한 부도다.

이곳이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지역이었다는 생각을 더듬는 중에 불기(佛器)를 닦고 있던 보살님이 커피 한 잔을 대접해 주었다.

따뜻함이 묻어났다. 이런 호젓한 산사에 흐르는 원광법사의 자애로움인가.

원광법사의 부도 탑을 왜 금곡사에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세속 구제, 호국불교, 나눔과 배려의 따뜻함을 생각하는 하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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