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머레인은 타르타리를 다스리는 지도자였다. 알렉산더처럼 대제국 건설을 원했던 그는 다른 나라들의 정벌에 나섰다. 연전연승으로 큰 영토를 확보했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그의 군대는 연전연패를 거듭, 멸망하고 말았다. 거느리고 있던 군대는 뿔뿔이 헤어지고 전장에는 케머레인 혼자만 남았다. 그를 사로잡으려는 적국의 추격을 피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다 지친 케머레인은 나무 밑에 쉬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케머레인의 눈에 개미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개미는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먹잇감을 짊어지고 개미구멍을 찾아가고 있었다. 개미구멍 앞에 도착한 개미는 짐을 지고 들어가기엔 구멍이 너무 좁아 다른 구멍을 찾기 위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미가 발을 옮기자마자 지고 있던 짐이 굴러떨어졌다. 개미는 다시 오르려고 했지만 짐이 계속 떨어져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개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케머레인은 개미의 집념과 끈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개미의 도전을 헤아려보고 있었다. 정확히 34번째의 실패를 하고 나서 개미는 짐을 지고 오르는 법을 터득, 마침내 다른 큰 구멍을 발견해 진입에 성공했다. 케머레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개미의 불굴의 투지와 도전에 감동, 죽을 생각을 거두고 다시 도전을 시도했다. 훗날 케머레인은 큰 영토를 가지는 자신의 소망을 이뤘다.

“도전은 성공과 실패로 나눠 진다. 도전을 해 봐야 성공이 있고, 실패도 있다. 도전하면서 삶의 많은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인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항서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의 말이다. 국가대표로는 1경기 출전이 전부인 박항서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후광으로 그해 10월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한국이 이란과의 승부차기에서 이란에 지는 바람에 히딩크에 이어 대표팀 감독 0순위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3부리그 격인 실업팀 감독으로 밀려났어도 기죽지 않았다. 박항세오의 베트남신화는 그의 도전정신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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