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감회(感懷)’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1996년 3월 어느 날, 경주 서면 건천 지나 금척리 모량리 주변 밭에는 추운 겨울을 난 보리와 밀들이 파란 싹을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고 있었다. 당시 경주 모량리 주변 들녘에서는 보리밭과 밀밭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날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 ‘나그네’를 쓴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흔적을 찾아 하루 종일 건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목월이 어릴 때 살았던 서면 모량리의 마을 안 파란대문 집과 목월 박영종(본명)의 학적부가 남아 있는 건천초등학교로 취재를 다녔다.

모량리 마을 입구에서 10여 분 굽은 길을 걸어서 들어가 수소문 끝에 목월이 어릴 때 살았다는 집을 찾았다. 집은 초가집을 현대식으로 꾸민 듯 아담한 삼간 집이었다. 집의 벽에는 타일을 붙이고 기와를 올린 전형적인 농촌 주택이었다. 화장실이 붙어 있는 시멘트 블록의 대문간 앞에는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당시 이미 소유주가 바뀌어서 주인은 성가시게 기웃대는 사람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학교에서는 목월이 11살 때인 1926년 3학년에 입학한 것으로 돼 있는 ‘건천보통학교(건천초등학교)’ 학적부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래된 서가에서 먼지를 툭툭 떨어내며 두툼한 학적부를 들고 나온 건천초등학교 교장 선생은 한참을 뒤적여 박영종의 학적을 확인해 주었다. 이렇게 취재해서 당시 3회에 걸쳐 전면 특집기사로 실었다.

이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 2014년 6월 ‘박목월 생가 복원’ 소식을 듣고 달려가 봤다. 하지만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목월이 어릴 때 살았다던 취재 당시에 본 집과는 완전히 딴판인 집들이 반듯하게 지어져 있었다. 목월이 살던 옛집이라고 복원한 집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시인 이상이 20년여 년 살았던 집을 그대로 보수해 ‘이상의 집’으로 재개관했다. 이상이 살던 당시의 단아한 기와집 모양이다. 원형을 잃지 않은 ‘이상의 집’을 보면서 두 번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엉터리‘목월 생가’의 모습이 또 생각나 씁쓸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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