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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며칠 전 이장우 의원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을 만들면 나라가 망하게 될 거라 했다. 귀가 의심스러웠다. 안전 관련 법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말했다고 하면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수 있다. 안전 관련 상임위에 속해 있는 국회의원이 한 말이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의원은 개인이 아니라 한국당 소속이다. 한국당은 누가 뭐래도 기득권 세력을 대표한다. 재벌체제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재벌 중심 체제는 1970년대부터 부작용을 드러냈다. 재벌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효율과 성과 중심의 철학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탑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높은 탑이라 해도 인권과 생존권을 희생하고 쌓아 올린 것이라면 누구를 위한 성과이고 효율이냐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효율 만능주의, 성과 지상주의로 고통받고 있다. ‘사람이 우선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집권한 정부가 들어서 있지만 사람은 여전히 뒷전에 있는 사회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내걸었으면 사람이 우선 되는 사회로 바꿀 수 있는 목표와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인명사고만 살펴봐도 사람은 맨 뒷전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종로 고시원 화재 사건은 무얼 말해 주나? 수십 층 대형 빌딩이 즐비한 종로 한복판에서 사람이 일곱 명이나 타죽었다. ‘고시원’은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서 들어가는 현대판 도시빈민굴이다. 그것도 언제 불이 나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공간이다. 국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살도록 밀어 넣고 방치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태안화력발전소 인명사고는 어떤가. 시신은 사고 난 뒤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몸은 여기저기 분리되어 있었다. 처참한 죽음이다. 같은 곳에서 지난 8년간 12명이 사망했다. 효율과 성과는 앞세우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에 놓아 발생한 참사다. 신문 방송에는 ‘2인 1조의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핵심을 벗어난 진단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2인 1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컨베이어벨트가 초고속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기어들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꺼내도록 강요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기계를 멈추고 꺼내게 하거나 다른 자동화된 장치를 개발해서 꺼냈어야 할 일이다. 2년 7개월 전 구의역 사고 때도 그랬다. 하청업체가 2인 1조 수칙을 안 지켜 생긴 일이라고. ‘2인 1조’는 원청과 사업자의 면피용 구호가 된 지 오래다.

문제의 본질은 안전 업무를 하청화, 외주화하는 일터의 서열화에 있다. 원청은 위험한 업무는 외주를 주어 책임은 면하고 돈은 챙긴다. 대기업을 필두로 한 원청은 하청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동시에 이익은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대기업이 일터의 서열화를 고집하는 이유인 동시에 이들의 이해를 대변해온 정부 관료들이 일터의 서열화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청구조 타파 없이 일터의 안전 확보는 불가능하다. 안전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체계를 놓아두고 안전한 사회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원청과 사업주에 대한 책임 부과와 강력한 처벌 없이 노동자의 안전은 보장될 수 없다. 이번에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면 국회는 존재 이유는 뿌리쩨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한국당은 효율과 성과가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재벌과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안전을 뒷전에 놓는 정치를 하게 된다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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