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에도막부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쇼군에 오르자 처음엔 선정을 펼쳤다. 쇼군이 되기 전 학문에 전념한 쓰나요시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워 개혁을 시행했다. 집권 4년째 되던 해 금지옥엽 같은 5살짜리 외아들이 사망, 후계자가 없어진 것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쇼군을 위로하기 위해 측근들이 용하다는 스님에게 점을 봤다.

스님은 “쓰나요시가 태어난 해가 개를 뜻하는 술(戌)년이기 때문에 개를 잘 돌봐야 후사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측근들로부터 스님의 말을 전해 들은 쓰나요시는 “쇼군이 행차하는 길에 개가 지나가도 상관없으니 살생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부터 쓰나요시는 24년 동안 살생금지법에 관련된 추가 법령을 60회나 걸쳐 발표했다.

40세가 넘도록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집념은 더욱 굳어졌다. 닭과 거북이 조류 같은 것을 일절 먹지 못하도록 하고 말을 버리거나 비둘기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유배를 보냈다.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제비를 잡아 먹인 아버지를 처형했다. 동물보호에 대한 과잉집념이 쓰나요시를 이상한 사람으로 병들어가게 했다.

쇼군의 지나친 동물애착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도쿄를 비롯, 여러 지역에 초대형 개집 전용 단지를 만들어 그 넓이가 20만 평이 넘었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쫓아내고 입주견이 10만 마리가 넘는 개집단지를 지었다. 개를 관리하는 관료를 따로 두고 개의 호적대장까지 만들었다. 개를 관리하는 돈이 연간 수십 만 냥이었다.

‘인간 위에 개 있고, 개 밑에 인간 있는 꼴’이 됐다. 개를 학대하는 사람을 밀고하면 포상금을 줘 ‘개파라치’들이 판을 쳤다. 백성들 입에서 “개 만도 못한 신세”라는 한탄이 쏟아졌다. 처음엔 시퍼런 서슬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백성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쓰나요시를 ‘이누쿠보(犬公方·개 쇼군)’라 부르며 조롱했다. ‘견공’은 ‘이누쿠보’서 비롯된 말이다. 쓰나요시의 개 사랑 집착은 온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 통치자의 독선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가를 보여준 ‘견공비사’다. 개 이야기로 개해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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