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를 깎으러 미장원엘 간다. 하지만 예전에는 미장원은 금남(禁男) 공간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당시 이발소의 분위기는 독특했다.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수술대 같은 두툼한 의자가 놓여 있는 정면 천정에 고결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키치(kitsch)한 그림들이 허름한 액자에 담겨 걸려 있는 풍경이다.

이런 것이다. 큰 어미돼지가 드러누워 아기돼지들에게 젖을 빨리는 그림이다. 토실토실 살 오른 엉덩이를 맞댄 10여 마리의 아기돼지가 경쟁적으로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이 수를 놓은 듯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의 여백에는 ‘길상여의(吉祥如意)’라는 글귀가 단정한 행서체로 새겨져 있었다. 돼지는 이처럼 옛날부터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에 자손 번창하고, 행운을 불러다 주는 길상(吉祥)의 동물로 여겼다.

화투놀이를 할 때도 화투의 일곱 번째 패에 그려져 있는 붉은 싸리밭의 멧돼지 그림은 화투판에 돈이 들어올 징조로 여겼다. 이 때문에 사실 화투판을 이기는 데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이 패를 ‘7월 홍돼지’라며 기분 좋게 여겼다. 꿈 해몽에서 돼지꿈이 ‘복이 온다’거나 ‘돈이 들어온다’는 길몽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내년은 ‘기해년(己亥年)’ 돼지띠 해다. 기해년의 십간 ‘기(己)’가 황금색을 상징해서 ‘황금돼지해’라 한다. 지난 2007년 돼지띠는 엄밀히 말하면 ‘붉은 돼지’였으며 내년이 진짜 ‘황금돼지 해’라는 것이다. 돼지가 재복(財福)과 행운을 상징하는 데다 황금 역시 재물의 대명사여서 내년 꿈은 좀 특별할 것 같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즐거운 습속’은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랴오둥(遼東)의 한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돼지 중에서 흰 돼지가 태어난 것이 신기해, 나라에 진상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랴오시(遼西) 지방에 이르자 이 곳의 돼지는 모두가 흰색이었다.” 이쪽의 특수성은 저쪽의 보편성이 될 수 있다는 ‘태평광기’에 나오는 이 우화를 되새기며 2019년, 헛된 대박의 꿈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둔 알찬 ‘황금돼지 꿈’을 한 번 꾸어보자.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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