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겨울 아침과 점심 사이
백반집 한 켠에 앉아
조금 식은 밥을
더 식은 국에 말아먹을 때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비, 비, 비, …… 빗방울
늙고 성질 급한 나무들은
벌써 알몸 되어 모조리 맞는다

메인 목으로 미끄럼 태우듯 밥알 넘기고
반찬 몇 점 우겨넣은 뒤
젓가락 숟가락 밥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신발 뒤꿈치 구겨 신고 담배 한 대 물고
백반집 문 밀고 어슬렁거리며 나서는데
이런 벌써 허기가, 또 배가 고파온다
만만하지 않은 세상살이
만만하게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도
정말 모른다, 기억하려 해도 자꾸 잊는다

지하 사글세방으로 돌아가는 길
든든해지지 않는 그 밥 한 공기의 우울이
순식간에 내린 빗물에 흠뻑 젖어버리고
조금씩 보기 좋은 솜털 같은 눈송이로 변해
얼어붙은 세상을 포근하게 뒤덮어
가끔은 희망이 될 때까지…




<감상> 늦은 겨울, 늦은 아침밥을 먹는 시인은 눈이 아닌 비를 맞는 나무가 된다. 나이 들고 성질 급한 나무는 세상의 풍파를 모조리 겪는다. 나이 들수록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체득하는 중년의 삶이 그렇다. 가장으로서 밥을 우겨넣고 노동을 위해 백반집을 나서면 또다시 밀려오는 마음의 허기들. 도무지 계속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들. 든든해지지 않는 밥 한 공기의 우울이 빗물에 씻겨 나가길 기원해 본다. 솜털 같은 눈송이가 보기 좋게 세상을 뒤덮듯, 따뜻한 밥 한 공기의 희망을 나눠줄 수 있는 세상은 오는가. 절망이 늘 희망을 덮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