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내 폭설이 내리고

나뭇가지처럼 허공 속으로 뻗어가던 슬픔이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고드름이 떨어져나갔다
내 몸에서

시위를 떠난 투명한 화살은
아파트 20층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사람들은 내 슬픔과 치욕을 알게 되리라

깨진 얼음 조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밟으며
지나가리라

얼음 조각과 얼음 조각이 부딪칠 때마다
얼음 조각이 태어나고

부드러운 눈은 먼지와 뒤엉켜 눈멀어가리라

<감상> 폭설이 내리면 고드름이 열리듯, 내 몸에서 슬픔이 뻗어나간다. 어느 순간 고드름이 떨어지듯 내 슬픔도 떨어져 나간다. 감춰진 내 슬픔과 치욕을 세상 사람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슬픔일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 혹은 죽음이 아닐까. 그 슬픔마저도 깨진 얼음 조각을 밟듯 세월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것이다. 새로운 얼음 조각이 태어나듯, 우리는 이내 새로운 슬픔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이에 부드러운 눈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먼지와 뒤엉켜 눈멀어 갈 것이니.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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