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서 주상복합단지로···대구 자갈마당 '상전벽해'

2014년 자갈마당 풍경이 담긴 사진이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되어 있다.

대구 성매매 집결지 일명 ‘자갈마당’이 빠르면 7개월 뒤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중구 도원동 일대에 있는 자갈마당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100년이 넘도록 유지돼 왔다.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힘들어졌다. 주변 개발이 이뤄지면서 더 이상 설 땅을 잃었으며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더욱 유지할 명분을 잃었다.

여러 분쟁이 있었지만 도원동 일대가 민간 개발로 확정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자갈마당.

1920년대 대구유곽 모습이 담긴 사진이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돼 있다.
자갈마당은 무려 100년 이상이 유지된 대구 대표 성매매 집결지다.

도원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공창제 정책에 따라 1909년 유곽이 들어서면서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가 시작됐다.

유곽은 중세 일본에서 조선시대 기생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기예를 갖추고 접대를 전담하던 여성들인 유녀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애초 성매매를 전담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점차 변해갔다.

자갈마당이라는 명칭은 여러 설이 존재한다. 성매매업소 여성들이 도망치는 발소리를 알아채기 위해 업소 주변에 자갈을 깔았다고 하는 설이 대표적이다. 도원동 명칭도 성매매 여성을 ‘도화’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들이 사는 동네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설은 성매매와 상관없이 일제가 대구 읍성 등을 허물면서 발생한 자갈을 이곳에 깔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고성동, 대구전매처, 자갈마당 일대의 옛날 모습이 담긴 항공사진이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돼 있다.

도원동에 일제강점기 유곽이 들어선 것은 물류의 중심지로 떠오른 경부선 철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식민지 수탈을 대표하는 연초 제조공장 부지, 대구신사가 들어선 달성토성과 가까운 곳이며 일본군 주둔지로 활용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해방 이후에도 자갈마당은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연합군의 위안소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도원동은 대구역 가까워 피난민들의 임시 집단수용소가 됐으며 피난촌과 해방촌을 형성됐다.

전쟁의 여파로 가난이 이어지면서 성매매 여성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쟁 후에도 성매매 집결지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며 1960년대부터 경제성장기에 접어들자 불법이지만 암묵적으로 관리돼 이어졌다.

△성매매 특별법, 더 이상 설 자리 사라진 성매매업소.

▲ 실제 영업장소를 그대로 활용해 예술작품 전시장으로 만든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 정혜련 작가 '예상의 경계'.

암묵적으로 이어진 성매매 업소는 2000년대 들어 직격탄을 맞았다.

2000년 10월 군산 대명동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 2002년 1월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는 성매매업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도망을 가지 못하게 밖에서 잠긴 문, 가혹 행위 등 그동안 암암리에 알려져 왔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가해진 인권 유린을 그대로 확인시켰다. 그 결과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고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전후 서울 용산을 비롯해 춘천 등 전국에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 도원동은 집결지 정비나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성매매업소 건물의 증축과 개축 등 시설 대형화가 진행되는 등 풍선효과를 봤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성매매 특별법은 강력했다. 성 매수자에 대한 처벌까지 가능해지면서 위력을 발휘했으며 일시적인 풍선효과를 누리던 자갈마당도 직격탄을 맞으며 힘을 잃어갔다.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까지 이어지고 주변에 CCTV 등 여러 단속 장비 들어서면서 더욱 위축됐다.

중부경찰서에서 조사한 결과 2004년 62개 업소 350명의 성매매 여성이 종사하던 것에서 2012년 39개 업소에 120명, 2017년 30개 업소에 90명으로 감소했다.

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지난해부터 올해는 그 수가 기존의 절반 이상, 10여 개 업소만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매매업소 쇠퇴와 개발 계획.

10일 오후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자갈마당’ 입구에 주상복합개발 사업승인 신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대구시는 2009년 대구도심재생 기본구상에서 도원동 일대를 도심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 지역이자 새로운 주거지로서 발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결과 도원동 인근에 대규모 주상복합시설인 대구역센트럴자이가 조성되는 등 주변지역 주택정비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자연스럽게 도원동 일대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성매매 집결지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는 ‘2020대구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2025 대구시 도시재생전략계획’ 등을 수립하며 도원동 일대 개발의 근거를 만들었다.

그 결과 도원동 일대는 원도심 재생 일환으로 ‘도심역사문화지구’라는 명칭의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됐다. 2015년부터 도원동 민영 개발을 위해 사업자가 나서 부지 매입 등에 나섰지만 남아있던 성매매 업소들의 반발이 거세 쉽게 속도를 올리지 못했다.

여기에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 주민들이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등 극심한 대립을 이뤘다.

지난해 3월 시는 집결지 철거 뒤 민간재개발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부지 매입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시는 같은해 8월 민영개발 추진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공영개발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개발계획 수립’ 용역을 시행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했다.

지난해까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던 도원동 개발은 올해 들어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실제 영업장소를 그대로 활용해 예술작품 전시장으로 만든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에 도원동 시공간 변천이 적혀 있다.박영제 기자 yj56@kyongbuk.com

이곳 개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도원개발은 도원동 일대 1만8천222㎡ 중 96%인 1만7천857㎡의 토지 소유주들에게 매매동의를 받아 낸 것이다. 토지수용률이 95%를 넘어 남아 있는 부지는 강제 수용가 가능하며 10일 시에 사업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는 매매동의서 확인, 교통영향평가 등 행정절차가 남아 있지만 큰 문제가 없으면 사업이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이다.

시와 도원개발은 빠르면 6~7월 내에 행정절차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도원동 개발이 본격적일 이뤄지면서 100년 이상을 유지해 온 자갈마당의 역사도 완전히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병권 도원개발 대표는 “토지매입 과정에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주민들도 개발에 동의해 줬다”며 “민간 개발이지만 대구의 중심인 중구가 발전하고 나아가 대구 전체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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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취재팀 김현목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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