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에 풍년이 들었다. 구룡포항 선착장 가까이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다방에 차를 배달시킨 모양이다. 오토바이를 탄 아가씨가 커피 배달을 와서 따뜻한 커피를 일하는 사람들에게 따라 주었다. 방파제 너머 먼 바다를 둘러보고 섰던 아가씨가 커피잔과 커피 값을 받아 챙기고 오토바이에 오르려 하자 선장이 손짓으로 아가씨를 불렀다. 선장은 선착장 한쪽에 덮어둔 거적을 들추고는 물고기가 가득한 고기 상자를 발로 툭툭 차면서 “이거 가져가서 해묵어라.” 한다. 상자에는 간밤에 잡아 온 콧물이 질질 흐르는 아귀가 상자 가득 들어 있었다. 선장은 친절하게도 아가씨의 오토바이에 물이 흐르지 않게 상자를 비닐로 싸서 실어주었다. 아가씨는 “고맙심데이. 잘 묵으게요.” 하며 오토바이를 돌려 선착장을 떠났다.

아귀 풍어의 바닷가 인심이 이렇다. 동해안 항구마다 잡아 온 아귀 손질로 바쁘다. 바닷가 마을 곳곳에는 햇빛에 말리는 아귀들이 바지랑줄에 내걸려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예전에는 뱃사람들이 그물에 걸린 아귀는 ‘돈 안된다’며 잡자마자 뱃전 너머 바다로 다시 던져버렸다. 이 때문에 아귀를 ‘물텀벙’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귀는 입이 바소쿠리처럼 떡 벌어졌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튀어나와 있어서 입가에 붙어 있는 굵고 뾰족한 이빨이 빗 모양으로 드러나 보인다. 날카로운 이빨로 먹이를 한 번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고 통째 삼킨다. 그래서 가끔은 아귀 뱃속에 아귀보다 더 비싼 생선이 들어 있어서 횡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도랑치고 가재 잡고’와 같은 뜻의 ‘아귀 먹고 가자미 먹고’라는 속담도 있다.

아귀는 자기 몸 3분의 1 크기의 먹이를 한꺼번에 삼키는 대식가다. 이 때문에 ‘아귀’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귀’는 불교에서 생전에 욕심이 많고 인색한 사람이 죽어서 된다는 귀신이다. 사람이 죽으면 분류돼 여섯 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이 그것이다. 지옥의 바로 위 단계지만 역시 ‘아귀지옥’이다. 아귀는 배는 산만큼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해서 늘 배고픔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동해안에는 ‘아귀 인심’이 후해서 뱃사람들이 죽어서 아귀 지옥에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아귀로 찜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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