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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 역사상 커다란 영향을 끼친 위인은 누구일까. 미국 작가 마이클 하트에 의하면, 1위는 무함마드이고 뉴턴·예수·부처에 이어 공자의 순서로 이름을 올렸다. 과학자인 뉴턴을 제외하면 모두가 종교인. 인간의 활동에는 물질 못지않게 정신이 월등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로마인은 세 번이나 세계를 지배했다. 처음엔 군단으로, 다음엔 법률로, 종국엔 기독교로’라고 누군가 말했다. 고대 로마의 특징을 단순 명쾌하게 정의한 문구라 여겨진다. 제국의 연혁에서 ‘기독교도’라는 표현은 타키투스가 최초로 사용했다. 네로 황제의 악정을 서술할 때였다.

서기 64년 발생한 수도 로마의 대화재로 민심이 흉흉해진다. 이를 타개하고자 네로는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예수가 후계자로 지목한 성 베드로와 초기 교회의 기반을 닦은 성 바울도 그 무렵 희생됐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시는 육체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대문호 괴테의 충고다. 장소에 깃든 정령을 관조하라는, 말하자면 그 내재된 배경에 침잠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언젠가 콜로세움 앞에 섰을 즘에도 그랬다. 인공 호수와 자연공원을 구상했던 네로의 ‘도무스 아우레아’와 함께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연상됐다.

웅장한 원형 경기장 옆에는 아치형 대리석 개선문이 놓였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콜로세움의 위세에 눌려 일견 초라한 자태다. 하지만 제국 말기의 걸작 건축물. 그 가치를 모르면 주마간산 지나치기 십상이다.

4세기 초엽 정적 막센티우스를 격파한 콘스탄티누스는 37세의 나이로 제국 서방의 최고 실력자로 등극한다. 기독교 세상에서 엄청난 의미를 품은 인물의 출현이자 중세로 가는 서막. 무력한 권력 집단인 원로원은 승리의 기념문을 세워서 바친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로마 올림픽 마라톤 결승점이기도 하다.

인근엔 황제들 거주지 팔라티노 언덕과 첼리오 언덕이 있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개선문 정면 상단엔 라틴어로 헌정사가 새겨졌다. ‘로마 원로원과 시민은 ∼ 정의로운 전쟁으로 폭군을 멸한 것을 여기에 기록한다.’

도무지 상형문자 같은 글씨를 보면서 언뜻 만감에 젖었다. 그렇다. 역사는 승자의 자취다. 패자는 유구무언 침묵할 뿐이다. 어제의 통치자가 한순간 반적으로 돌변한 현장. 사서를 즐겨 탐독하는 지라 과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갈등이 생겼다.

신의 수가 30만에 달하는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특이한 존재였다. 로마인 정서상 그들은 기본적 의무를 이행치 않으려는 이단아였다. ‘악타 마르티룸’은 순교한 기독교도에 관해 언급한 책이다.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사례도 소개됐다.

주님의 병사로서 제국의 병역에 종사할 수 없다는 젊은이, 그리고 거부할 경우 사형에 처하겠다는 총독의 응답이 실렸다. 1700년 전에 벌어진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 물론 당시는 그런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참수형 판결이 내려지자 청년은 환호성을 지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조만간 도입될 예정이다. 이를 둘러싸고 국론이 엇갈린다. 군대 입영과 대체 복무가 상호 간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절묘한 균형점이 필요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든가. 고대 로마 시대 초창기 기독교 모습이 어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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