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케어’가 난리다. 본성을 잃어버린 동물을 관리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람이 먹고 살만해지면서 동물들을 친구처럼, 자식처럼 품 안에 끼고 반려(伴侶)로 삼으면서부터 생긴 일이다.

경북 봉화군의 깊은 산골에 국립수목원이 있다. 수목원 명물 가운데 명물은 단연 호랑이다. 수목원의 깊은 곳 높은 우리 안에 호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살고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사육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사람이 끼때 맞춰 던져주는 살코기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호랑이들은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애를 태운다. 고양이과의 호랑이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찾는 훤한 대낮에는 으레 그늘 아래서 졸거나 늘어져 잠만 퍼질러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서 잠든 호랑이들을 보며 속으로 “에이, 예의도 없는 놈들. 멀리서 자네들을 보려고 이렇게 찾아 왔는데!” 하는 야속한 마음이 든다. 조금의 예의라도 있다면 잠깐 일어나 그 당당한 다리와 선명한 줄무늬의 우람한 몸통으로 한 번 뛰어오르거나, 물리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엄니를 드러내며 포효는 한 번 못할망정 둥그런 네 발로 실룩 실룩 한 번 걸어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태연히 졸거나 잠에 빠져 있다.

이들 호랑이에겐 웃지 못할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다. 사육사가 닭고기 대신 살아 있는 닭을 던져 주었더니 퍼덕이는 닭의 날갯짓에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하더라는 것이다. 높은 우리에 가둬 놓았지만 이 호랑이는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을 뿐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닌 것이다. 이 호랑이를 야생으로 돌려 보낸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초겨울부터 집 앞 반송 아래에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나날이 찾아와 따뜻한 겨울 햇살을 훔쳐먹고 있다. 이놈은 당당히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누가 먹을거리를 주지 않는다. 빛나는 털과 완벽한 보호색을 띤 이 고양이는 그 누구의 ‘케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봉화 호랑이가 행복할까? 이 고양이가 더 행복할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이면 호랑이든, 개든, 고양이든, 새든 사람 좋자고 ‘애완(愛玩)’이라며 동물을 길러서는 안 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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