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어항이라 말하는 늙은 소년이 있다
그는 여기다 송사리와 갈겨니 버들치 치어들을 키운다
살얼음 낀 들판과 / 초겨울 거리의 꽃배추도 키운다


그의 어항은 새장도 자전거도 아니지만
부엉이나 백일홍, 사막의 달까지 그가
몰래 키우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식전의 포만과 식후의 공복 사이에
그가 놓치곤 한다는 그 작은 물고기들은
들을 지나는 개울 따라 강으로 가는가


소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저녁이 흘러나오는 서랍에 있나
다른 안경을 가진 낯선 이로 서 있나


그를 기다리는 어항은
풍경을 한정하는 말랑한 갈색 수정체,
이음새 없는 고요를 안고 있다


문 닫은 날의 인공호수처럼
표지만 남아있는 두꺼운 이야기처럼
비밀스럽기도 하다





<감상> 소년은 안경을 왜 어항이라 했을까요. 어류와 들판과 사막 같은 자연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을 담으려면 이음새 없는, 즉 경계가 없는 고요를 안고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넓으면 우주를 담을 수 있지만 좁으면 송곳조차 찌를 수 없으니 심경(心鏡)이라 하죠. 늙을수록 마음에 때가 묻기 마련이니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죠. 어느덧 순수했던 소년은 다른 안경을 가진 낯선 이로 서 있지는 않은지. 하여 어항은 순수한 소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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