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 때였다. 전쟁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영국 왕 조지 6세는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영국 왕 내외를 교외 별장으로 초대, 주말을 함께 보냈다. 교회 예배를 보고 난 후 피크닉 장소로 옮긴 루스벨트는 영국 왕 내외에게 핫도그를 대접했다.

한 나라 국왕에게 핫도그 대접은 왕실 국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산해진미가 아닌 핫도그 등장에 영국 왕 내외는 크게 당황했다. 고귀하고 우아한 모습이 몸에 배어 있는 국왕 내외에겐 먹는 모습이 조금 흉할 수 밖에 없는 핫도그는 난감하기가 그지없는 음식이었다.

조지 6세 왕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핫도그를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입에 넣고 씹으면 됩니다.” 루스벨트의 설명에 용기를 낸 조지 6세는 손으로 핫도그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영국 왕 핫도그를 맛보다, 맥주까지 곁들여 두 개째’ 다음날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1면 톱 기사 제목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기사는 미국 국민에게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미국의 국민음식 핫도그를 먹었다는 사실은 미국민에게 영 왕실의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루스벨트의 ‘핫도그 외교’는 심오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영 왕실의 최고 권위자가 거리낌 없이 핫도그를 먹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고고하고 도도한 영 왕실의 이미지를 미국민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바꿔놓기 위한 차원 높은 한 수였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과 영국은 보란듯이 군사동맹을 맺고 독일 일본 이탈리아 제국주의 국가들과 맞서 싸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대로 백악관을 방문한 전미 대학미식축구 리그에서 우승한 클렘슨대학 선수들이 저녁 만찬으로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를 대접받아 화제가 됐다.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정지)으로 백악관 요리사들이 일시 해고상태였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은 셧다운 부작용을 알리고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트럼프의 정치쇼였다. 루스벨트의 ‘핫도그 외교’와는 차원이 낮은 ‘패스트푸드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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