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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그날의 먼지 농도를 살펴보는 일로 하루가 시작된 지 오래다. 창문을 열지 못하고 산 지가 오래고 거리에서 크게 웃거나 말하는 일을 삼가고 지낸 지가 오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먼지는 처음부터 그 어디에든 있었다. 아무리 깨끗이 털어낸 옷에도 다시 먼지는 붙어 있었고 정성 들여 닦아낸 바닥에도 먼지는 또다시 떨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먼지와 같이 사는 것이 일상이었고 어쩌다 햇살 속에 점점이 떠오르는 먼지를 볼 때면 신비로움마저 일곤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먼지가 아니라 우리의 세상이던 때였다.

아마 먼지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와 같을 것이고 인류가 진화하듯 먼지도 대를 이어 진화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내 기억의 가장 아랫부분에 저장되어있는 먼지는 마른 논바닥에서 일던 흙먼지이다. 겨우내 그 논바닥에서 뛰어다니며 놀곤 했는데 우리들의 발에 그 바닥이 단단히 다져지기 전 그곳에는 눈을 뜨고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흙먼지가 일곤 했다. 그런데도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놀다 보면 머리 위가 뽀얗게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놀다 집으로 들어가면 엄마는 옷을 벗겨 먼지를 털어내곤 했는데 방바닥이 뿌연 흙먼지로 자욱해지곤 했다. 그래도 먼지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를 뒤흔드는 먼지는 그런 차원의 먼지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먼지가 진화를 한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동네에 한두 번 들어오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KTX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그때는 나무로 밥을 짓고 난방을 했다면 지금은 가스나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여 온갖 일상생활을 한다. 우리의 생활이 이렇게 변화됨에 따라 먼지도 여기에 맞춰 변신을 시도해왔다고 할 수밖에 ….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눈으로 볼 수 있던 그 먼지가 아니다. 머리카락의 10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의, 눈으로는 구분도 할 수 없는 미세 먼지다. 더욱이 그것은 자연 현상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아니라 문명의 발달이 빚어낸, 생활 수단이 되는 여러 기계에서 배출되는 먼지들로 그야말로 몸속에 축적이 되는 먼지들이다. 특히 크기가 더 작은 초미세먼지는 몸에 더 잘 축적되며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심혈관계의 여러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심혈관질환을 이미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치명적이기도 하거니와 정상인들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각종 알레르그 반응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며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곳이 공격받을 우려도 있다. 이러다가는 인류 종말론자들이 예언하던 바이러스나 종교 등의 문제가 아니라 먼지에 뒤덮여 이 인류가 끝이나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떤 나라에서는 도시 곳곳에 초대형 공기 청정기를 세우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우리는 여기에 대한 대책은 아랑곳없고 정치인들은 변함없이 그들의 권력을 지키고 뺏으려는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쩌면 이 먼지가 이 시끄러운 세상을 잠재워보려는 의도로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날이 더 거세어지는 이유는 아무리 두드려도 아무 반응도 없이 우리의 싸움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먼지가 이 지경까지 온 게 아닐까.

멀리로 보이던 푸른 하늘을 못 본 지가 한참 된 것 같다. 아파트 꼭대기에 걸려있던 뭉게구름을 본지도 한참 됐다. 이제 이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 아니라 먼지의 세상이다. 다시 우리가 이 세상을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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