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 있고 유려한 시어로 노래,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선 눈길

사윤수 시인의 시집 ‘파온’ 표지.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의 시간으로부터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아는 순간이 온다. 여기, 누군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자신은 누군가를 위해 진양조로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이 있다. 침침한 불빛에 켜켜이 스스로 유배당한 자. 사윤수 시인의 시집 ‘파온’(최측의농간)은 매달려서 견디다 흔들리며 죽어 환생한 ‘것’들의 모음집과 다르지 않다.

유려하고 격조 있는 시어들이 서늘한 문장으로 어우러져 발산하는 현묘한 시적 진술. 시집 ‘파온’은 고적(孤寂)의 정서가 흐르는, 그러나 그 고적의 감수성으로 현실을 손쉽게 재단하는 행위를 기피할 줄 아는 자가 상재한, 모처럼의 시집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낭만주의자임과 동시에 현실주의자이기도 한 한 명의 시인·무사가 자신의 기분이나 경험으로 타자(나 아닌 것)를 아름답거나 추하게 재단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타자의 안팎을 물들이고 있는 기쁨과 아픔의 이면을 세심히 살피고 있는 시의 풍경과 만날 수 있다.

‘매달려서 견디는 것들‘을 살필 줄 아는 시인의 여림 혹은 헤아림은 필연적으로 안에서도 밖을 너끈히 알아차리는 감수성과 다르지 않을 터인데, 그로부터 시인은 밖에서 안을 향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밖에서 안으

로의 그 빛나는 시적 여정은 물론 안에서 밖으로의 여정이 치열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매달려서 견디는 것들’은 ‘흔들리다 죽은 것들’과 닿는데 ‘환생’은, 매달려서 견딤을 통해서라면, 불가능하지 않다.

흔들리며 사는 것들로부터, 그것들의 바라봄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의 흔들림으로부터 이 시집은, 이 시인은, 잉태될 수 있었다. 타자가 견디고 있을 생의 무게를 향한 그의 시선은 그러므로 무잡의 혼돈이 가득한

당대의 현실 속에만 부유하거나 침잠하지 않으며 그것들의 배후와 근저를 향해 서늘한 궤적을 그리며 춤춘다.

‘파온, 생의 무늬가 아스라이 흩어지던 은빛 머리카락이었나 그 무늬 만져보면 부드럽고 따스하니 진양조로, 불어라 바람이여’<파온>부분.

끝내 정확히 가닿을 수는 없을 마음과 흩뿌려져 버리고 말 노래의 한계 속에서 ‘파온’은 그 가닿을 수 없음과 흩뿌려져버림을 뜨거운 의지로, 새로운 내일의 기억으로 돌파해내려는 목독에의 의지와 다르지 않다.

시조처럼, 판소리처럼, 넋두리처럼 펼쳐질 생을 향한 그 목독에의 의지는 기억을 추억이 아닌 기억·상처로 온당히 제사(祭祀)지낼 것이며 노랫말로 목독 가능한, 이 시인 특유의 운율을 통해 기억은 박제된 후일담이아닌, 내내 곁에서 함께 숨 쉬어갈 뿌리로 화할 것이다. 못처럼 박혀 뿌리처럼 갈래갈래 뻗어가는 것. 그로부터 비로소 그는 타자가 견디고 있는 생의 무게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자문한다. “시가 나를 세상에 정붙이게 할 수 있을까/무엇과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삶이 무너지던 순간을 값싼 낭만의 주절거림으로 덧칠하지 않을 줄 아는, 아니 오히려 단호하게 그것을 거부할 줄 아는 시의 무사한 명과 만난다. 그 시인은 한 번의 휘두름을 위해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검을 고요하게 가는 사람이다. 예리한 시선으로 시적 인식의 부지런한 담금질을 통해 그가 걷고 있는/걷게 될 시의 길을, 그 새로운 서정의 길을 오래 지켜봐야 하리라. 그가 마침내 무엇과 끝까지 가는지를.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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