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마저 반수면 상태인 치매병실
아흔의 김미자 할머니는
면회 온 아들을
젊은 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새색시처럼 웃는다

물휴지가 젖었다며 투정이다
휴지와 물휴지 사이에 있었던 물은 잉여다
여기에서는 ‘사이’에 있었던 것은 빠지고 처음이 된다
아들의 이전의 남자로
젖기 이전의 마른 몸으로

물휴지 한 통을 다 뽑아 침대 난간에 널어두고
낮잠을 주무시는 할머니
젖은 것은 말려야한다는 당연한 생각이 말라가고 있다
분별이 사라진 자리는 무중력이다
잘 마른 물휴지가 조심스럽게 발을 뗀다
우주인이 처음 고요를 딛듯




<감상> 치매 노인은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분별이 점차 사라집니다. 시간은 처음이 되고 공간은 무중력의 장소가 됩니다. 젖기 이전의 처음을 기억하고 있으니 아들을 젊은 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맙니다. 사랑하던 남편을 일찍 사별하였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우주인이 처음 고요를 딛듯, 그 처음을 몹시 앓고 있는 것입니다. 몹시 앓다 보면 시간마저 사라질 것이고, 그 많던 처음도 사라지고 맙니다. 어쩌면 우리는 숱한 처음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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