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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언필칭 주관적 가치가 담겨서 명확한 재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 통념상’이란 잣대로 이를 가르는 경향이 많다. 부정 청탁 금지법도 마찬가지다.

일명 ‘김영란법’은 일정한 금액으로 상한선을 정해 그 여부를 분별한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일면도 있으나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었던 관행을 반추하는 법률로서 도덕적 변화를 유도하지 않겠는가.

영국의 고위직 관리를 역임한 토머스 모어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그는 법관으로서 재판을 공정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매진했다.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는 유혹과 탈선의 위험이 상존함을 명심하고,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거듭하였다.

선물에 대한 그의 처신은 요즘도 귀감이 된다. 어떤 미망인의 송사 때였다. 정성껏 노력한 덕분에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 그 부인은 제법 금품을 숨긴 장갑을 내밀었다. 모어는 말했다. “숙녀의 새해 성의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장갑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돈은 일체 사절합니다.”

병상에 누운 한 남자의 소송도 그랬다. 그의 아내가 사은의 뜻으로 도금한 컵을 가져왔다. 순간 모어는 기지를 발휘해 거기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쾌유를 건배한 다음 돌려주었다. 또 다른 기회에 사례로 배달된 컵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값어치가 한결 비싼 자신의 잔을 대신 전하도록 심부름꾼을 보냈다.

모어의 처세는 인간적 고뇌의 지혜라 여겨진다. 그냥 막무가내 거절했더라면 특별한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담은 사양은 손길을 냉큼 받아들이는 결정 보다 한층 어렵지 않으랴.

선물은 마력을 지녔다. 남에게 줌으로써 행복이 차오르고 인간관계의 윤활유로 작동하며 인정이 흐르는 매개이다. 소중한 애물을 손쉽게 내미는 분들을 보면 아낌없이 주는 성자처럼 경이롭게 느껴진다. 한데 선물은 받는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고, 주는 사람에게 종속되는 힘으로도 작동하니 아이러니다.

가시철사의 발명은 미국 농업사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국은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개척민에게 값싸게 또는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했고, 드넓은 농지는 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담장이 필수였다.

1870년대 중반 제작된 가시줄을 이용한 울타리 설치로 목축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대량 생산으로 나무 목책을 대체하면서 비용이 저렴하고 일손이 절약됐기 때문이다. 소떼를 몰고 광야를 종횡하던 카우보이 전성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광대한 들판을 철조망 구획하여 양질의 가축 집약 사육이 가능해졌고, 농가 소득이 크게 증대됐다.

이후 가시철사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수백만 생명을 앗아간 장비가 되었다. 1861년 미국 남북 전쟁 당시는 가시줄이 없었다. 그것이 일찍 만들어졌더라면 사상자 숫자는 갑절로 늘어나고, 기간도 연장됐을 거라고 분석한다.

지난해 철거된 휴전선 GP 철조망을 선물로 사용한 일화가 한동안 구설에 올랐다. 육군 모 부대를 방문한 여당 국회의원 일곱에게 그 가시철사 7cm씩을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는 보도. 정치적 상징성이 깃든 잔해를 홍보물로 쓸 때는 좌고우면이 필요하다. 안보에 대한 국민 여론이 엇갈린 상태라 괜한 분란을 유발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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