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예술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전쟁으로 유럽 미술가들 또한 당시 사회와 미술사의 흐름에 대한 회의와 비판적 태도를 갖게 됐다. 전통적 가치의 미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술 세계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미술사의 출발점에 독일의 미술가 그룹 ‘제로(Zero)’가 있다.

“제로는 소리의 영도(零度)이며 하나의 소리가 끝나고 다음의 소리가 시작하는 그 순간의 침묵, 거기에서부터 출발 되는 창조행위다. 제로는 고요함이다. 제로는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으로 요약되는 ‘제로’의 기치다.

제로 그룹은 1958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됐다. 처음에는 하인츠 마크, 오토피네가 먼저 의기투합했고, 1961년 귄터 위커가 합류해 활동 범위를 넓혔다. 하인츠 마크는 스틸 재료를 사용해 움직이는 작품을 선보이는 키네틱아트의 문을 열었다. 정지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움직이는 스틸 작품에 조명을 비춰 환상적 공간을 연출했다. 오토 피네는 불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두껍게 발라진 물감에 불을 그을리고 흘러내리게 해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퀸터 위터는 못을 사용한 형식미술을 창안했다. 나무판에 박힌 못들은 생소하고 새로운 회화적 결과물이었다.

제로의 실험적 미술은 1960년대 당시엔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미술 세계였다. 그들의 기치대로 미술사의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제로 그룹은 독일 뿐 아니라 초국가적 미술가들의 전시 네트워크이기도 했다. 1958년 첫 전시 이후 1966년 해산될 때까지 유럽과 미국 등에서 55회의 기획전을 열었다. 참여 미술가들도 이브 클라인, 피에로 만초니, 루시오 폰타나 등 당대 최고의 미술가들로 130여 명이나 됐다.

포항시립미술관이 이 제로그룹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제로파운데이션과 함께 철강도시 포항의 철문화에 예술을 입힌 대형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전시회는 포항시 승격 70주년과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오는 9월 3일부터 2020년 1월 19일까지 열린다. 세계적인 미술 이벤트가 포항에서 기획되고 있어서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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