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수협 죽도위판장에서 문어 경매를 받기 위한 중매인들의 눈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설을 하루 앞둔 4일 새벽 5시 30분 포항시 북구 죽도동 죽도어시장 내 포항수협 죽도위판장.

아직 밖은 동이 트기 전 어스름과 쌀쌀한 바닷바람이 가시지 않았지만, 위판장 내부는 경매가 진행될 문어, 소라, 오징어, 대구, 아귀 등 각종 수산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특히 경매 수산물 상태를 잘 살펴보기 위해 실내조명이 대낮같이 밝게 비추고, 좋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낙찰받기 위해 굳은 의지가 가득 찬 중도매인들의 안광(眼光)은 이보다 더욱 빛나고 있었다.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 그리고 수산물을 가리키는 꼬챙이 질을 하는 포항수협 경매사의 구성진 목소리에 30명의 중도매인은 상의 조끼나 모자로 다른 사람이 못 보도록 한 후 손가락으로 가격을 제시했다.

이날 주로 팔린 것은 포항을 비롯한 경북에서 설 명절과 제사에 많이 쓰이는 문어.

작게는 400g에서 큰 것은 20kg에 이르는 대형문어까지. 평소보다 갑절로 뛴 1kg 당 평균 5만 원 내외에 경매가 주로 이뤄졌다. 설 대목 마지막 주말인 지난 2~3일 1kg 당 5만5000원 보다는 소폭 내렸다고 했다.

▲ 포항수협 죽도위판장에서 문어 경매를 받기 위한 중매인들의 눈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중도매인은 바닥에 깔린 문어가 다리는 다 달려 있는지는 물론 크기와 상태 등을 번개 같은 눈빛으로 살펴본 후 흡사 전투 같은 빠른 손놀림으로 가격을 제시했다. 경매사 또한 이에 못지않은 눈썰미와 숨 쉴 틈 없는 구령으로 낙찰된 중도매인의 번호와 가격을 연신 불렀다.

찰나의 순간에 기쁨과 아쉬움, 승패가 교차했다. “33만 원을 불렀는데 옆에서 33만7000원을 불러 못 샀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이와 반면, 좋은 문어를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샀다며 어퍼컷 세리머니와 환호성을 외치는 중도매인 모습이 공존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에너지로 구경 나온 시민들과 취재를 한 기자마저 전염돼 마치 홀린 사람처럼 2시간 가까이 이 모습을 지켜보기 바빴다.

30여 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37번 중매인 김두표(57) 씨는 “젊었을 때는 설 명절이나 휴일 없이 아침 일찍 일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국가에 세금을 내는 나의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자부심도 상당하다”며 “오늘 700만 원 어치 질 좋은 문어를 많이 낙찰받아 기분이 좋다. 거래처 등에 판매하는 일이 남았다”고 환히 웃었다.

한편 다수의 중매인과 시장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불경기에 따른 수산물 거래나 식당 등으로의 판매가 예전 같지 않다”며 새해에는 경기가 회복돼 죽도시장이 한층 활기차길 기원했다. 죽도위판장은 설 당일인 5일과 다음날 6일은 휴무이며, 평소에도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만 쉰다.

죽도위판장이 총성 없는 전쟁터라면 호미곶등대는 진리나 종교적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엿보였다.

▲ 정일영 주무관이 호미곶등대 연혁을 설명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호미곶등대 등을 관리하는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호미곶항로표지관리소.

흔히 등대지기로 알려진 이들은 항해 선박 안전을 위해 광파(등대 불빛)은 물론 첨단 항로표지용 선박 자동위치식별장치(AIS) 등 음파, 전파와 특수 표지를 관리한다.

또 포항 마산항부터 경주 지경항까지 인근 무인등대 등 항로표지 시설과 장비 기능을 살피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올 연말 퇴직을 앞둔 정태영 소장을 비롯해 정일영·조근수·김준동 주무관이 호미곶 등대를 지키는 바로 이곳을 지키는 등대지기들이다.

이들은 2인 1조로 주 야간 교대근무를 한다. 설 연휴 휴가를 갈 수도 있지만 서로 상의를 해 해마다 돌아가며 최소 인원만 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낮에는 정 소장과 정 주무관이 근무하고 있었다. 즐거운 설 연휴 만에 하나라도 선박 안전 항해에 차질이 없도록 평소 이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관련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지난해 말부터 무인화된 경주 송대말등대를 화상으로 원격 감시하는 모습도 시연했다.

정일영 주무관은 “명절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그립고 힘들기도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오는 호미곶은 그나마 낫고, 울릉도나 독도 등대를 지키는 동료들은 훨씬 고독하고 힘들어 신경이 쓰인다”며 “독도 등대지기가 국토 최동단을 지키는 자부심이 있다면 호미곶 등대지기로 111년 긴 역사와 문화재이기도 한 해양안전 건물 호미곶등대를 지키고 해양 사고를 막는 역할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선배들로부터 ‘너 자신이 바다의 등대 불빛처럼 돼야 남을 비출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며 “스스로 어두워(좌절, 소극, 우울 등) 있지 말고 밝게(긍적, 적극, 친절) 빛나야 남을 돕고 일 또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의미깊은 말을 조용하지만 힘있게 했다.

정태영 소장은 “지난 35년간 경북 동해 해안가 등대를 다니며 해가 뜰 때마다 항상 선박 무사항해와 선원들의 안전을 빌었고, 매해 설날 역시 한 해 동안의 바다 안녕을 기원했다”며 “올해 퇴직을 앞둔 만큼 이러한 마음들이 더욱 간절해 지면서 새로운 기분이 든다”고 깊은 감회를 밝혔다.

정 소장은 이어 “인간적인 심정으로 명절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쓸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며 “하지만 오직 오랜 기간 선박 안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집념을 가진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올해도 일출과 등대, 바다를 바라보며 국민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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