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jpeg
▲ 한정규 문학평론가
예로부터 인류에게는 축제란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축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설’이다.

축제는 자연에 순응하고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예술적 연희가 실현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고된 삶을 좀 더 즐겁게 향상시키기 위해 만든 놀이다. 그 같은 세시풍습은 농촌공동체로부터 시작됐다.

선사시대엔 토템이즘, 부여에서는 12월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시며 춤을 추며 즐기는 ‘영고’가 있었으며, 고구려에서는 10월에 ‘동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동예는 무천, 삼한의 10월 제, 마한은 5월에 논밭에 씨 뿌리기를 끝내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또 농사일을 끝낸 10월 또한 같은 행사를 했다.

지금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으로는 음력 1월 1일 설날, 그리고 상원, 입춘, 한식,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백중, 8월 한가위, 9월 중구, 10월 상달, 11월 동지, 12월 섣달이 있다.

삼국사기에 ‘설’과 ‘한가위’는 신라시대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것이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의 명절로, 축제로, 이어져 왔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 정월 초하루 날이다. 새해의 첫머리 설이란 ‘삼간다’의 뜻으로 동짓날에서 정월 대보름까지를 말한다. 그 기간 동안 몸과 마음가짐을 삼가고 집안을 정갈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해의 첫날 새 옷을 입고(설빔) 음식을 장만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부모님에게 세배를 올리고 떡으로 만든 세찬과 세주를 나눠 먹으며 덕담을 나누고 이웃 간에 복을 주고받는다. 또 일가친척 어른들은 물론 동네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린다. 어른들은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의 세뱃돈으로 답례를 한다.

설날 행사는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지어먹고 낟가리, 더위팔기, 다리 밟기, 달맞이, 약밥, 보름나물 먹기 등 다양한 풍습이 있다. 그 풍습들 중에 보름 전후날 밤 이웃마을끼리 불 싸움을 한다. 또 보름날 밤에는 집 안 구석구석에 쑥불을 피우고 마당 한가운데에 대나무를 모아 불을 피워 쑥 타는 냄새와 대나무 마디 터지는 소리를 내어 해로운 균을 박멸하고 잡귀를 내쫓는다.

그런 풍습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식량 소비를 억제하고 민족의 단합을 막기 위해 법으로 금지시켰다. 그리고 약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이라 하여 설날로, 그리고 음력 1월 1일 설날 놀이를 못 하게 했다. 그때도 우리 민족은 일제의 눈을 피해 조용히 설을 지냈다. 독립이 되고 1970년대까지 구정과 신정이라 하며 설을 두 번 지냈다. 결국 정부가 2중과세라 하여 새해 시작 첫날은 양력 1월 1일로, 그리고 음력 1월 1일은 세시풍속인 민족의 명절 설날로 했다.

산업화가 되고 도시화가 되면서 부모 형제 할 것 없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을 뿐만 아니라 삶의 형태가 복잡 다양화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인지 이제 설날은 가까이 사는 가족끼리 모여 성묘하는 정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설날 이웃 간에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오고 가는 아름다운 풍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각박한 세상으로 변해버려 아쉽다. 민족의 대명절 설, 그때 그날의 풍습을 떠올려 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