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만 하면 어떤 범죄라도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그는 왕의 보물함에 금을 잔뜩 가져다 바치기만 하면 어떤 형벌도 줄어들거나 아니면 미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선 금을 만들자, 금이 권력이니까! 피자로와 함께 그는 이웃 원주민들을 밥 먹듯이 죽이고 약탈했다. 그는 손님을 친절하게 접대하는 원주민의 관습을 역이용해서 무자비하게 기습하곤 하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묘사된 1513년 파나마지역을 가로질러 유럽인 최초로 태평양을 발견한 에스파냐인 발보아를 그린 내용이다.

모험가 발보아는 이처럼 광기 어린 약탈로 모은 황금으로 초법적, 초시간적 삶의 흔적을 남겼다. 발보아는 국왕이 임명한 식민지 총독 엔씨조를 무력으로 쫓아버리고, 스페인 국왕에게 황금을 선물해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발보아는 반란자이자 모험가이자 영웅으로 초시간적 삶의 흔적을 남겼다. 이처럼 스페인 정복자 발보아의 행동 결과에는 명확한 모순이 존재한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과정은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발보아식’ 초법적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 손혜원 의원의 예가 대표적인 사례다. 손 의원의 문화유산 보호하겠다는 선의(?)는 누가 보아도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국회의원이 정책활동으로 지역을 살리는 것이 마땅한데 직접 땅을 샀고, 땅과 건물을 매입하는데 조카와 보좌관이 동원됐다. 대출까지 받아서 부동산 매집을 한 것은 전형적 투기로 비치기까지 한다.

손 의원은 이런데도 “매입 부지에 나전칠기박물관을 건립한 뒤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며 투기가 아니라는 것에 전 재산과 의원직,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다. 이 같은 항변에 대해 정치권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사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 수행이 저해되는 ‘공직자 이해 충돌’이라는 추상적이고 어려운 말들을 한다. 손 의원의 행위는 한마디로 금력을 가진 권력가의 지방 소도시 정복행위나 마찬가지다. 손 의원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선의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죄가 없고, 목포에 문화를 꽃피게 한 초법적, 초시간적 위인이 될지 지켜 볼 일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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