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땅에 몰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날 그해 사과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버지 땅이 내 땅이 되던 날 나는 사과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었다. 병 걸린,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
붉은,
사과 따는 일을
<감상> 아버지는 책임을 방기하였으므로 목줄을 뜯는 늙은 개였다. 비옥한 땅마저 척박한 영토가 되었다. 이 영토가 빨리 내 것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나는 되풀이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여 아버지 땅에다 몰래 사과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사과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어느덧 나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땅이 내 땅이 되던 날, 나는 아버지를 묻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무너진 영역을, 아버지와의 불화를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화해하였으므로 사과가 열리고 붉은 사과를 딸 수 있었다. <시인 손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