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안을 둘러싸고 정국이 어수선했다. 개헌 반대의 선봉장이었던 서민호 국회의원이 지방시찰차 순천에 들러 저녁 회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 술 취해 난입한 육군 대위가 시비를 걸면서 권총을 빼 들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서민호 의원이 호신용 권총을 쏴 반격, 서창선 대위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다음날 아침 서 의원은 경찰에 자진출두 정당방위 사실을 밝혔으나 검찰은 살인죄 현행범으로 구속했다.

국회는 정치탄압으로 간주하고 석방 결의안을 통과시켜 대법원장 앞으로 통고했다. 대법원장은 부산지법에 사건을 이첩했다. 이 기회에 서민호 의원을 파멸시키기로 한 이승만 정권은 이 사건을 이첩받은 합의부 재판장 안윤출 부장판사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다. 경무대 비서가 판사실까지 감시하며 경무대에 수시로 보고 했다. 법원 주위에는 ‘서 의원 석방하면 안 판사를 죽인다’는 협박성 벽보가 나붙었다.

경무대와 집권 여당의 온갖 압력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안윤출 부장판사는 헌법상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등을 이유로 석방을 명하는 석방 명령서를 발부했다.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이끄는 시위대가 법원으로 몰려와 ‘민주당 주구 안윤출을 죽여라’며 난동을 부렸다. 안 판사 하숙집이 피습당하기고 했다.

“이렇듯 주위에 날카로운 감시를 받으면서도 내 딴에는 양심을 잃지는 아니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법관의 사명을 망각지를 않았던 것이다. 군인이 전장에 나가 전사하는 것이나 판사가 판사의무를 감당하다가 죽는 것이나 피차 마찬가지다. 양심이 명한 대로 법령을 적용하자 하고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이리하여 나는 5월 19일 드디어 석방 결의의 명령을 내렸다. 정말이지 나는 석방 결정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 심장은 마구 뛰었고, 고뇌에 얽힌 머리는 빙빙 돌기만 했다. 오로지 나는 양심이 명한 대로 법을 적용했을 뿐이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협박을 무릅쓰고 죽을 각오까지 하면서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석방 명령서를 발부했을 당시 안윤출 판사의 심경 고백이다. 서슬이 시퍼런 적폐청산 정국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시킨 서창호 판사의 각오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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