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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숙 예끼미술관장

정지용 시인 ‘향수(鄕愁)’의 한 구절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 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 풍경을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정겹게 표현하고 있다.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곧 진달래가 산 사면을 따라 울긋불긋 피어날 봄이 올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에 자리한 고향은 마음만큼이나 다양한 표현이 자리한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라고 하고,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라고 한다. 한국 전쟁 또는 전쟁과 관계없이 고향이 수몰되어 고향을 방문할 수 없게 된 실향민들이 있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鄕愁)를 생각하면 그들의 아픔이 짐작된다.

고향 집, 고향 부모, 고향산천 더 나아가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에게는 ‘한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의 고향이 될 것이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안광식’작가 그림을 감상해 보자. 고향 주변 강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속엔 알 수 없는 연민과 그리움, 행복했던 추억이 자리한다. 그 이미지조차 뚜렷하게 기억되고 추억되는 작품으로 남길 소망한다” -작가노트

Nature - Memory 안광식 作

이 작품에는 현실에 있는 듯, 없는 듯, 풍경은 현실의 경계를 넘어 작가의 기억 속에 인지된 모습이다. 이름없는 들꽃과 들풀이 어우러져 있는 강가에, 하늘빛과 맞닿은 물빛이 아스라이 추억의 저 너머로, 작가는 우리를 안내한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작고, 이름 없는, 길가에 핀 꽃들과 풀. 그리고 고향길 길목에 자리한 강을 보면서 자랐어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잊어 가는 소중한 기억들을 풍경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스톤파우더와 젯소를 섞어 바탕 작업만 열 번 이상 들어간 다음, 동양화의 물성처럼 색을 스며들게 하거나 칠한다. 그래서 파스텔 톤의 깊이 있는 색 또한 아름답다. 예술적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이미지와 색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연(대상)이 있지만, 그것을 보고 그리지 않는다. 빛이 빚어낸 자연의 기억을 가지고 화면에 옮긴다. 서양의 르네상스(16세기) 시대에 3차원의 입체 형상을 원근법과 명암법을 이용하여 2차원의 평면에 옮기는 시각적 리얼리즘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 이러한 눈으로 보이는 세계, 시각적 리얼리즘을 거부한 관념적 리얼리즘을 구축하게 된다. 경험에 의해 인식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서 예술의 형상은 작가의 생각에 따라 색과 형태가 변형된다.

헤겔은 “진정한 리얼리티는 우리들이 매일 정하는 대상과 직접적인 감각 너머에 있다. (....) 일상적인 리얼리티의 단순한 겉모습과 묘사를 떠나서 예술을 한층 높은 리얼리티와 더욱 진실한 존재를 표현한다”고 했다.

진리와 이성 그리고 문화, 예술을 세우는 힘은 우리 내면의 인식과 감성에 있다. 과거에 함께 했던 사람과 주변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따스한 시선으로 재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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