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살리고 곽재우·김덕령 천거, 풍전등화 조선 구한 충신의 향기 가득

도정서원 현판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도정서원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을 천거하고 옥중의 이순신을 구한 ‘예천 충’을 상징하는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의 뜻을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약포 정탁 대감 초상
도정서원(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42호)은 모래 빛이 아름답고 넓은 백사장을 간직한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으로 들어서는 좁은 오솔길은 시대에 변화에도 순응하지 않은 고즈넉함과 아늑함을 가진 공간이다.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하기 위해 이 흙길을 걷었던 많은 선현의 발자취가 느껴진다.
도정서원 현판
서원은 1640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건립해 예천읍 내 향 현사에서 모시던 위패를 이곳으로 옮겨 제향했다. 이후인 1697년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강당 채를 건립해 서원으로 승격했고, 1786년 선생의 3자인 청풍자 정윤목(鄭允穆·1571~1629)을 추가 배향했다. 이후 1866년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97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서원 내에는 약포 사당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로 지정돼 상현사(尙賢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원의 뒷편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인 약포정탁대감의 사당이 있다. 상현사(尙賢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도정서원의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풍판이 딸린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자연석 축대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사방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간소한 오량 가이다. 전면 3칸은 전돌을 깔았으며, 뒷면 3칸은 우물마루를 놓아 위패를 봉안토록 했다.
서원입구에는 팔덕루라는 누각이 자리하고 있다.
강당 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전면에 난간을 돌려 누각 형식을 취했다. 정면 중앙 2칸은 통 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양쪽 1칸은 온돌을 놓았다. 대청 전면과 후면 모두 두 짝 널문을 달아 폐쇄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고, 대청 오른쪽 앞의 1칸은 온돌방, 뒤의 1칸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고, 오량 가로 매우 간소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도정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원에서 오른편에 있는 지경당 이곳도 기숙사로 사용됐다.
서원을 중심으로 왼편으로자성재는 기숙사이다.
1997년 동재·서재, 전사청, 누각, 화장실 등 5동의 건물을 복원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邑湖亭)은 1601년(선조34)에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강물을 뜰 듯이 강 가까이 세운 정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약포 서원은 약포 정탁과 그의 아들 청풍자 정윤목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이다.

정탁(鄭琢·1526∼160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이다. 현감 원로(元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교(僑)이고, 아버지는 이충(以忠)이며, 어머니는 한종결(韓從傑)의 딸이며,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성균관 생원시를 거쳐 1558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도정서원에서 바라본 내성천의 넓은 백사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뽐내고 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했다. 경사(經史)는 물론 천문, 지리, 상수(象數), 병가(兵家)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94년에는 곽재우(郭再祐), 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을 천거하여 전란 중에 공을 세우게 하였으며, 이듬해 우의정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72세의 노령으로 스스로 전장에 나가 군사들의 사기를 앙양하려 하였으나, 왕이 연로함을 들어 만류하였다. 특히 이해 3월에는 옥중의 이순신을 극력 신구(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으며, 수륙병진협공책(水陸倂進挾攻策)을 건의하였다.

1599년 병으로 잠시 귀향했다. 이듬해 좌의정에 승진되고 판중추부사를 거쳐, 1603년 영중 추부 사에 올랐다. 이듬해 호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예천의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 ‘약포집’,‘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등 이 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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