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는 밀려드는 빛을 고스란히 끌어안았다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한 파고가
길 복판에 우두커니 선 고라니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소용돌이치는 허무 속으로 지워지고 마는
단 하나의 고라니,
그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낯선 감정을
그냥 황홀이라 불러도 되었던 걸까
고라니는 죽어서 무슨 별이 되었을까
공중에 아로새겨지는 신화 속 별들,
누군가는 어떤 고라니의 마지막 순간을
별들의 목록에 써내려가야 하는지 모른다
고라니의 몸을 감쌌던 빛줄기가
내 쪽으로 순식간에 휘감겨올 때
고라니의 넋과 나의 넋이
한꺼번에 끓어오르던 걸 누가 알까
고라니의 우울한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찰나,
고라니도 나도 어디선가
초저녁별로 반짝이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감상>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고라니를 집어 삼킵니다. 낯선 우울한 감정을 황홀이라 부르고 싶지만, 어느새 죽음을 불러 옵니다. 고라니는 고스란히 자신의 몸을 감정에 맡긴 채 빛을 끌어안습니다. 빛을 끌어안으므로 별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고라니의 우울한 감정이 자살모드로 전환되듯, 나도 어디선가 황홀한 꿈을 꾸는 건 아닐까요. 하여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하나씩 별들에 의탁하여 목록을 써내려가야 합니다. 그 목록이 채워지면 꿈들이 반짝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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