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그릇처럼 깨어진
삶에는
하나하나 맞출 수 없는
놀라운 오류가
끼여 있다
침대에는 방향을 기록하는 장치가 그대로 있어서
엄마가 나를 낳은 날은 언제이며, 내가 방바닥에서 일어설 때는
언제이고, 내가 탁상 위의 꽃병을 깨뜨린 날은 언제인지 등을
알뜰하게 챙겨주는 수호신 같은, 그런 조력자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이미 나는 부서져 내린
사기그릇
맞출 수 없이 깨어진 틈 속에서, 젊은 날
아버지 어머니의 거룩한 침묵의 밤이
고여 있다





<감상> 삶은 깨어진 사기그릇처럼 놀라운 오류가 숨어 있다. 삶은 마음먹은 대로, 기록한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오류투성이다. 사기그릇처럼 깨어져 맞출 수가 없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삶이 십중팔구(十中八九)다. 침대에는 삶의 방향을 기록하는 장치가 있지만 과거의 삶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수호신 같은 조력자가 있었기에 그 동안 사기그릇이 온전했는지 모른다. 이미 나는 부셔진 사기그릇이므로 맞출 수가 없다. 하지만 젊은 날 부모님의 거룩한 침묵의 밤들이 틈 속에 고여 있다. 사기그릇의 갈라진 틈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잘 견디고 있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