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애 마지막 오페라이기도한 ‘마술피리’는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초보 관객들은 물론이고 특히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교향곡의 아버지 베토벤은 이 작품에 대해 ‘모든 종류의 음악 형식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며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또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 이 오페라의 후속편을 만들려고 시도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코지 판 투데’ 등 수많은 걸작 오페라들을 남겼다. 작곡가 본인이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음에도 그가 남긴 대부분의 오페라 작품들은 이탈리아어로 작곡되었다. 모차르트가 11세에 작곡한 ‘바스티안과 바스티엔’과 35세에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는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작곡 되어진 몇 안 되는 독일 오페라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낭만주의 독일 오페라의 거장인 바그너는 ‘마술피리’야 말로 독일 최초의 위대한 오페라 작품이라 극찬했다.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18세기에는 대부분의 오페라 작품들이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오페라 제작비의 대부분을 왕족이나 귀족 혹은 부유층들이 감당했기에 지배 계급의 취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활동한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등 당대 유명한 작곡가들의 곡 중에는 지배 계급의 누군가에게 헌정되어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페라 ‘마술피리’는 당시 모차르트의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금전적으로도 많이 힘든 시기였음에도 자신의 나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징슈필(징슈필-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이란 형태의 소박한 오페라 작품이었다.
‘마술피리’가 초연된 빈의 극장은 서민들이 자주 찾는 장터에 위치한 가장 서민적인 극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오페라가 공연될 때면 항상 티켓이 매진될 만큼 인기를 끌었으며 초연한 이 극장에서 100회가 넘게 공연되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가장 흥행 성적이 좋은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초연 두 달 뒤인 1791년 12월 5일에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현재 국내외 오페라극장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함께 보기에 좋은 오페라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가장 흥행하기 쉬운 오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내외 대학생들이 함께 만드는 열정적인 ‘마술피리’ 공연을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