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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일반적으로 교육, 연구, 그리고 봉사 등을 대학의 3대 기능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19세기 초 독일의 베를린대학을 필두로 한 근대적 대학들이 생겨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의 주된 기능은 교육과 연구였다. 교육을 통한 지식의 전달과 그러한 지식을 창조하기 위한 연구 활동이 학문의 전당으로 일컫는 대학의 기본적 의무였던 것이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들어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양성이라는 책임의식이 확산되고 사회로부터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더해지면서 봉사이념이 대학의 주된 기능 중 하나로 추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대사회로 오면서 대학의 봉사이념은 대학이 소재한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역할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논의돼 왔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대학들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그 결과, 대학과 지역은 마치 ‘2인 3각’경기에 출전한 하나의 팀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즉, 대학의 발전과 지역발전은 서로 동등한 것이며, 이 같은 상호발전이 결국 사회와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본대학들 사이에선 ‘공익학(公益學)’이라는 새로운 학문개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제 대학의 공익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한층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최근 우리지역에 소재한 포항공과대학(포스텍)이 포항시민을 상대로 하는 ‘포스텍 문명시민강좌’를 출범시켰다. 그동안 여러 지역단체나 공공기관 등에서 주최한 시민강좌는 많았지만 국내 유수 대학 중 하나인 포스텍이 지역주민을 위한 학기제 운영의 시민강좌를 개설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는 강좌를 출범시키면서 ‘포항시민과 소통하고 대도시 포항과 상생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며 그 취지를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포스텍과 우리 지역사회는 서로가 동반자적 협력관계임을 보여줄 만한 그 어떤 것도 딱히 없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국내외에서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대학이 우리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도시의 이미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캠퍼스 내 체육시설이라든가 공원시설 등 물리적 공간이 일정 부분 개방돼 시민들에게 나름의 여가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선 지역사회에 대한 일종의 봉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은 대학과 지역사회 간의 표면적 관계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 난 결과일 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대학 차원의 실질적 고민과 구체적 역할 수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민강좌를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지역과 상생하고자 하는 최근 대학 측의 의지는 매우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 내지는 공적 삶을 위한 시민성 훈련이 인문교양을 담당하는 대학의 사회봉사 책임이고 보면 이번 ‘문명시민강좌’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수강신청 접수가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만에 모집정원이 다 채워질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웠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구의 생명체 중 문명을 이루고 사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분명 문명인이다. 한데, 지구 밖 외계 생명체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들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무엇일까? 미국의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그에 대한 답으로 인문학을 꼽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인간존재의 의미’를 통해 만약 ‘우리 종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영혼은 인문학 속에 살고 있다’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인문학이야말로 우리보다 월등한 과학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인간에게 주목할 만한 유일한 가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과학의 발견적이고 분석적인 힘이 인문학의 내성적 창의성과 결합된다면, 인간존재는 무한히 더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문명시민 강좌’ 출범을 반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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