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나는 작가다’ 기획

김훈 소설가
‘영일만 아침의 찬란한 햇빛이 자전거 바퀴 부챗살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둥근 해안선의 영일만 바다에는 파도가 끝없이 밀려왔다. 영일만에는 파도가 가득했다. 바다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영일만에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빛을 경험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단독자’가 됐다. ‘절대 고독’으로 인한 좌절의 두려움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신바람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칼의 노래’·‘남한산성’의 작가 김훈(70)의 ‘내 마음의 영일만’ 풍경이다.

김훈 작가는 젊은 시절 자전거 여행 중 포항 영일만의 빛을 만나는 순간 ‘단독자’가 됐다.

그 빛은 지금껏 보아온 빛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생(生)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동안의 삶이 무의미해져 망연자실했다.

원초적 시간과 마주한 것이다. ‘텅 빈 충만’ 그것이었다.

영일만의 새로운 빛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시간이 부정되고 새로운 시간 앞에서 좌절과 함께 알 수 없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부터 작가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포스텍(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가 첫 학기의 주제로 ‘나는 작가다’로 기획한 문명시민강좌 첫회가 진행된 7일 저녁 포스텍 국제관에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도연 포스텍 총장을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와 전업주부 등 품격 높은 문화에 갈증을 가진 시민들의 눈망울들이 빛났다.

첫 강연자로 초청된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포항의 상징인 영일만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오래된 기억에서 불러냈다.

신문기자에서 소설가로 전업한 김 작가는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육하원칙은 진실을 전하는 인간의 뛰어난 원칙”이라며 “그러나 그 원칙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하는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 작가로 나섰다”고 전업의 계기를 설명했다.

작가는 호미곶 등대를 보아야 동해안을 항해하는 배가 자기의 위치를 알 수 있듯이, 나라는 존재를 비교 수단이 없이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왔다.

그리고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래서 백만 년을 하나의 단위로 분석한 찰스 다윈의 위대한 진화론을 즐겨 읽는다.

작가는 고백한다.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남한산성 소설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한 흔적이 뚜렷하다.”

김훈 작가가 포스텍 국제관에서 7일 강연을 하고 있다.
김훈 작가가 포스텍 국제관에서 7일 강연을 마친 후 토론과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작가는 또 불평등이 심화한 한국 사회를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떠올렸다.

3살 때인 1·4 후퇴 때 부모님에 업혀 열차 지붕에 타고 부산 피난길을 갔다. 나중에 아버지께 들은 얘기가 충격이었다. 열차 지붕 위에 매달린 피난민들은 떨어지고 부딪쳐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도 열차 안에는 고관대작들이 피아노와 가구, 심지어 애완견까지 싣고 가는 기막힌 현실이 전쟁통에서도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아버지가 알려준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밥을 얻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영감(靈感)은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책 속에는 글씨와 문장 체계가 있을 뿐이다”며 “어린 자녀에게 책 읽기를 너무 강요할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책의 경험보다 더 강렬해 삶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