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원맨쇼' 하듯 다채로운 연기

‘돈’[쇼박스 제공]
100억 원대 부자를 꿈꾸는 청년 조일현(류준열)은 여의도 증권가에 주식 브로커로 입성한다.

주식 종목코드를 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지만, 지방대 출신에 연줄 없는 현실의 높은 벽 앞에 좌절한다. 실시간 공개되는 개인별 거래 수수료 성적은 몇 달째 0원. ‘이 길이 아닌가 보다’라며 절망할 때 누군가 검은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바로 베일에 싸여있던 증권가 큰 손. 그를 만나려면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야 한다고 해서 ‘번호표’(유지태)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작전 지시에 클릭 몇번으로 수억 원 수수료를 챙긴 조일현은 점차 돈맛을 알게 된다. 쉽게 번 돈은 냄새를 풍기는 법. 금융감독원 ‘사냥개’ 한지철(조우진)이 냄새를 맡고 수사망을 좁혀온다.

‘돈’[쇼박스 제공]
이달 20일 개봉하는 ‘돈’(박누리 감독)은 금융범죄를 소재로 한 범죄영화다. 스프레드, 프로그램 매매, 공매도 같은 주식 관련 용어가 제법 등장한다. 그러나 ‘주알못’(주식을 알지 못하는 자)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작전세력들이 순식간에 시장을 교란하고, 돈이 돈을 버는 모습 등이 스릴 있고 쫄깃하게 그려진다. 식상한 범죄영화 틀을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돈맛에 빠진 젊은이가 돈에 지배당했다가 결국 잘못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순진하고 의욕 넘치던 신입사원 조일현은 처음 누리는 물질적 풍요에 행복해하지만, 차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광기 어린 모습으로 바뀐다. 정당하게 번 돈이 아닌 탓이다. 수사망이 조여올수록 초조해하고 불안에 떤다. 그러면서도 클릭을 멈출 수 없다.

‘돈’[쇼박스 제공]
류준열은 조일현의 감정 변화를 조금씩 농도를 달리해 입체적이면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어떤 역할이든 맞춤옷을 입은 듯 해내는 류준열이지만, 한층 더 성장한 연기를 본다.

외모, 학벌, 성격, 집안까지 타고난 ‘금수저’ 동기 전우성(김재영)이나 조일현에게 번호표를 소개해준 회사 선배(김민재) 등 다양한 인물도 극을 풍성하게 한다.

다만 남성 위주 증권사에서 유일하게 여성 브로커인 박시은 대리(원진아)의 모습은 전문직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담고 있어 씁쓸하다.

‘돈’[쇼박스 제공]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망에 포착됐는데도 위험천만한 거래를 계속 지시하는 번호표나 직원의 수상한 실적에도 손 놓고 있는 회사, 상사의 모습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현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베를린’ ‘부당거래’ 등의 연출부와 조감독을 거친 박누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조 감독은 1년여간 장 시작 전인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여의도 증권가에 머물며 사람들을 지켜봤고 다양한 주식 브로커와 펀드매니저 등을 만나 취재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 덕분에 증권사 사무실 내부의 분주한 모습 등이 상당히 현실감 있게 그려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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